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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마약 운반책… 늪에 빠진 20대들

입력 | 2024-08-28 03:00:00

“월 2000 보장” 유혹뒤 신상공개 협박





마약 조직 말단에서 마약을 은닉, 배달하는 일에 20대 젊은이들이 가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명 ‘드로퍼(Dropper·마약류 운반책)’라고 불리는데 최근 돈이 필요한 젊은층이 주로 몰리고 있다. 마약 조직은 이들의 신분증 등을 미리 받아둔 뒤 나중에 탈퇴하려 하면 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27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옛 트위터) 등에서 ‘드로퍼’ ‘드라퍼’ 등을 검색하자 관련 홍보 글들과 텔레그램 채널 주소들이 나열됐다. 이를 통해 채널에 접속하자 ‘드라퍼 구인 월 2000 보장 가능. 신분 개빡세게 오픈(공개) 가능한 자 구인’ 등의 설명이 적힌 채널이 여럿 나왔다.

취재팀이 ‘드로퍼를 하고 싶다’며 한 채널을 통해 말을 걸자 채널 운영자는 얼굴 사진, 주민등록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신상 서류를 ‘담보’로 요구했다. 이들은 지원자가 나중에 ‘드로퍼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경우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고 협박해 일을 그만두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 상반기(1∼6월) 경찰에 검거된 마약류 공급 사범은 272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4%나 늘었다.





신분증 저당 잡힌 마약운반 청년들… “신상 공개” 협박에 발 못빼


마약운반 늪에 빠진 20대
“고수익 알바” 거짓 홍보로 유혹… 주민등록초본-가족 신상도 요구
“가족피해 우려, 그만두지도 못해”… 마약배달 처벌 강화돼 징역 5∼7년

드로퍼에 가담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는 관련 텔레그램 채널 등에 접근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검색사이트 구글이나 X(옛 트위터) 등을 조금만 검색해 봐도 관련 글들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고수익 알바’ 등을 찾다가 우연히 이런 글들을 본 뒤 마약 조직에 발을 들이게 되는 셈이다. ‘일당 100만 원 이상 보장’, ‘최소 수익 월 2000만∼3000만 원’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을 내건 경우가 많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일자리를 문의하고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 지원자 가장해 접근하자 “민증 보내라”

취재팀은 마약 조직이 드로퍼를 고용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지원자를 가장해 접촉을 시도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주민등록증은 물론이고 등초본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신상 서류를 요구했다. 수 초 만에 답장을 보내온 한 마약 판매책 채널은 “보증금 300만 원과 얼굴 사진을 달라”며 주민등록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부모 이름과 전화번호, 그 외 가족 전화번호, 주거래 통장 계좌번호 등을 요구했다. 서류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기록된 주문 내역을 캡처해 보내라는 경우도 있었다. 지원자에게 자녀가 있는 경우 다니는 학교 등 자녀 신상 정보까지 요구한다.

취재팀이 복수의 관련 텔레그램 채널을 관찰해 보니 드로퍼 지원자들은 대부분 20대였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에 따르면 20대 드로퍼 경험자들이 일을 그만두려 할 때마다 조직은 “네 신상 정보를 공개하겠다” “집 주소를 안다. 사람을 보내겠다”고 협박하며 계속 일을 시킨다.

드로퍼들은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자신의 신상이 공개될까 봐 혹은 본인이나 가족이 위해를 당할까 봐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취재팀이 살펴본 한 텔레그램 채널에는 탈퇴를 시도한 남성 드로퍼의 사진과 함께 “이 ×× 잡아서 알몸 동영상 재밌는 콘텐츠 준비 중이니 기대해 주세요”라는 운영자의 협박 글이 올라왔다. 마약 채널 운영자들은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수개월 단위로 대화방을 삭제하는 일명 ‘방폭’도 하고 있다. 운영자들은 통상 3, 4개 채널을 상시 운영하는데 각 채널마다 20명가량의 신상이 공개돼 있었다.

● 경찰, 공급책 집중 단속…적발 시 징역형

경찰에 따르면 드로퍼 같은 마약 공급 사범은 증가 추세다. 올 상반기(1∼6월) 경찰에 검거된 마약 공급 사범은 2725명으로 지난해 동기(2089명)보다 30.4%(636명) 늘었다. 당초 제조나 밀수 사범을 중심으로 단속 활동을 해온 경찰은 이달부터 유통 사범을 집중 단속 중이다.

전문가들은 ‘큰돈’의 유혹에 별생각 없이 가담했다가는 형사처벌 등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3월 인천지법은 ‘마약 딜러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드로퍼가 된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마약 전문 박진실 변호사는 “처벌을 받게 된 드로퍼 의뢰인들은 다들 ‘형이 셀 줄 몰랐다. 제대로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하곤 한다”며 “예전보다 판매책들이 드로퍼들에게 보내주는 양이 많아 징역 5∼7년까지 받기도 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하선은 상선의 정보를 전혀 모르게 설계된 점조직에서 드로퍼 등 최하선은 수사 꼬리 자르기용으로 이용되기도 쉽다”고 했다.

투약과 돈벌이를 모두 하려는 목적으로 드로퍼가 되는 이들도 있는 만큼 투약 사범부터 드로퍼의 길로 빠지지 않게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돈은 없는데 마약을 사고 싶은 20대들, 큰돈을 벌려는 젊은이들이 가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 마약과장 출신 천기홍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는 “투약 사범에 대해서는 치료나 재활을 통한 재범 방지 노력을 정책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