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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마 영영 못 봐” 소아마비 걸린 11개월 가자 아기

입력 | 2024-08-28 11:57:00


27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중부의 한 텐트에서 11개월 된 압델라흐만 아부 알제디안 군이 카시트에 누워 자고 있다. 압델라흐만은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다리에 영구 마비가 생겼다. 데이르알발라=AP 뉴시스

“생후 11개월 된 막내가 갑자기 더 이상 기어 다니지 않았습니다.”

아부 알제디안 가족은 지난해 10월 중동전쟁이 터지자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에 있는 집을 떠나 대피소를 전전했다. 비록 텐트지만 마침내 정주할 장소를 구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막내 아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활발하게 잘 웃고 일곱 명의 형, 누나들보다 발육이 빨랐던 아기 압델라흐만의 왼쪽 다리가 얼어붙었다. 원인은 소아마비였다.

27일(현지 시간) AP통신은 가자에 25년 만에 나타난 소아마비 확진자 압델라흐만의 이야기를 전했다. 압델라흐만은 예방접종을 하나도 받지 못한 11개월 아기다. 태어난 직후 전쟁이 시작되면서 신생아 접종이 중단됐다. 병원들마저 공습 피해를 입어 알제디안 가족이 머무는 중부 가자에는 알아끄사 순교자 병원 한 곳만이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가자 의료시스템 붕괴가 소아마비 등 예방 가능한 질환의 발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 해왔다. 압델라흐만이 확진 판정을 받으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압델라흐만의 어머니 네빈과 형제자매들. 데이르알발라=AP 뉴시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주는 어머니 네빈에게 가혹한 시간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아이의 대변 샘플을 요르단으로 보냈고, 이달 16일 돌아온 결과는 확진이었다.

네빈은 “압델라흐만의 첫 걸음마를 영영 볼 수 없게 됐다”며 “현재 가자에서는 치료도, 재활도 받을 수 없다”고 망연자실했다. 압델라흐만은 온 종일 바구니 모양의 신생아 카시트에 누워서 지낸다. 빠르게 자라 이제는 카시트가 작아 보인다.

WHO에 따르면 전쟁 전에는 가자에서 소아마비 예방접종이 큰 차질 없이 이뤄졌다. 압델라흐만 또한 전쟁이 아니었다면 소아마비에 걸리지 않고 건강히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압델라흐만은 영구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소아마비는 증상이 발현되면 치료제가 없다.

현재 가자에서 소아마비 증세를 보이는 어린이는 2명 더 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나 WHO는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하수와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지며 전염성이 매우 높다”며 “아직 증상은 없지만 소아마비에 감염된 아이가 수백 명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25일 가자지구에 소아마비 백신을 실은 구호트럭이 반입됐다. 사진 출처 유니세프 팔레스타인 소셜미디어 X


유엔 산하 아동구호기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31일부터 가자 어린이에게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재개한다. 유엔은 당초 안전한 백신 접종을 위한 일주일 휴전을 촉구했지만 소아마비 확산이 현실화하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군은 25일 백신을 실은 유엔 구호 트럭의 반입을 허용했다. 유엔은 물약처럼 입을 통해 투약하는 경구용 백신을 사용해 접종 대상자 약 64만 명 중 95% 이상에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