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을 공포한 조선의 ‘칙유’(왼쪽)와 일본 명치 천황의 조서(오른쪽). 일본 조서에는 어새와 천황 서명이 모두 담겼지만, 조선 칙유에는 행정 결재에 쓰는 어새만 찍혀 있다. 동아일보DB
이문영 역사작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 발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제가 자기들 세상과 똑같은 식민지를 만들고 싶었겠는가? 그저 편하게 식민 통치를 하고자 이것저것 만든 것뿐이다. 조선 말기보다 식민지 시대가 좀 더 나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독립지사들은 왕국 조선을 부활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향한 것은 민주공화국이었다. 3·1운동으로 결성된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왕국을 만들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1917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선포된 대동단결선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대동단결선언은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윤세복, 조소앙, 박용만 등 내로라하는 명망가 14인이 만들었다. 이 선언에서 말하는 ‘삼보’는 토지와 국민과 정치를 의미한다. ‘선위’라는 말은 ‘권위를 양도한다’는 뜻이다. 독립지사들은 일본인, 즉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한 주권 양여는 근본적인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제에 의해서 대한제국은 강제로 병탄되고 말았다. 조약으로 위장했지만 이는 모두 불법적인 일이다. 따라서 이후 일어난 일들 역시 불법적으로 저질러진 일들이다. 우리는 원치 않았음에도 강제로 일본 국민으로 등록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국적법을 시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적을 변경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지사들을 강제로 소환하기 위해서 일부러 한 짓이다. 가령 중국에서 체포된 독립지사가 있다면 그들은 그가 일본 국적을 가졌으므로 일본이 재판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제 압송할 수 있었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다. 안창호와 같은 경우도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 붙잡혀 조선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이런 것이 그들이 말하는 근대적인 법체계 속에서 ‘합법’으로 탄압하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