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좋아했던 걸까? 독일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는 1월생인데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우구스트는 독일어로 8월이란 뜻이다. 마케는 20대 이른 나이에 바실리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의 주요 화가가 되었다.
‘서커스’(1913년·사진)는 그가 1910년대부터 관심을 갖고 종종 그린 주제였다. 그림은 서커스에서 일어난 사고를 묘사하고 있다. 세 명의 곡예사가 말에서 떨어진 여성 기수를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다. 사고를 친 흰말은 무대에서 나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앞쪽에 등을 돌리고 앉은 남자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표정은 볼 수 없지만 흐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갈색으로 표현된 피가 여자의 입과 이마까지 흥건히 적신 걸 보니 어쩌면 이미 사망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화가는 동료를 잃은 곡예사들의 표정을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비탄의 표정을 차마 그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서커스장이 순식간에 처참한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을 터. 이는 아마도 화가가 직접 목격한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은 더 성공적인 쇼를 위해 곡예사들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서커스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케가 서커스에 관심을 가진 건, 연약한 기수의 처지가 사회 변방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입지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마케는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의 한 유파인 ‘청기사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청기사는 ‘푸른 기사(騎士)’라는 뜻이다.
마케는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빠르게 인정받았다. 그러나 1918년 8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소집 명령을 받고 입대하면서 경력이 단절됐다. 서부 전선에 배치된 지 두 달도 안 돼 전사했기 때문이다. 향년 27세였다. 8월이란 이름을 가진 청년 화가에겐 너무도 잔인한 8월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