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1개월 아기, 갑자기 기지 못해 의료체계 붕괴로 접종 시기 놓친 탓 WHO “전염성 높아, 수백명 감염된듯”
27일 가자지구 중부의 한 텐트에서 11개월 된 압델라흐만 아부 알 제디안이 카시트에 누워 자고 있다. 압델라흐만은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다리에 영구 마비가 생겼다. 데이르알발라=AP 뉴시스
“생후 11개월 된 막내가 갑자기 기어다니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 아부 알 제디안 씨와 부인 네비네 씨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벌어지자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의 집을 떠났다. 대피소를 전전하며 어렵게 여덟 자녀를 키웠다.
부부는 아이들을 통해 피란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 잊었다. 특히 전쟁 발발 직전인 같은 해 9월 태어난 막내 압델라흐만은 부부의 보물이었다. 잘 웃고 형과 누나들보다 발육이 빨라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현재 압델라흐만은 온종일 바구니 모양의 신생아 카시트에 누워서 지낸다. 신생아용이라 곧 돌을 맞는 그에게 비좁다. 전쟁 여파로 아들에게 예방 접종을 못 하고, 제대로 된 육아용품을 구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만 타들어 간다.
네비네 씨는 27일 AP통신에 “현재 가자지구에서는 어떤 치료도, 재활도 받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전쟁이 발발하지 않고, 백신을 맞았다면 압델라흐만 또한 곧 또래 아기들처럼 아장아장 걸었을 텐데 영영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쟁 발발 전만 해도 가자지구에서는 소아마비 예방 접종이 큰 차질 없이 이뤄졌다. 보건 전문가들은 전쟁 장기화로 가자지구의 의료 체계가 사실상 붕괴해 소아마비 등 예방 가능한 질환의 발병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압델라흐만의 발병으로 이 우려는 현실이 됐다.
WHO는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하수 등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진다. 전염성 또한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아직 증상이 없지만 소아마비에 감염된 아이가 수백 명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최소 2명의 아기가 소아마비 증상을 보였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