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머 英총리, 獨-佛 순방길에 트럼프 재집권-러 위협 대응 위해 적이었던 獨과 연합군 창설 등 논의 EU와 맺은 무역협정 재협상 시사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와 질 갈라드 주독일 영국 대사가 27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을 거닐고 있다. 베를린=AP 뉴시스
“유럽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겠다. 전임 보수당 정부가 망친 관계를 바로잡겠다.”
지난달 5일 취임한 영국 노동당 소속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유럽연합(EU) 핵심 국가인 독일 및 프랑스와의 관계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임 보수당 정권이 단행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의 후폭풍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서유럽 동맹국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재집권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유럽 주요국과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안팎의 여론을 반영한 행보로 풀이된다.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과 러시아의 위협이라는 양대 위험을 모두 제어하려면 유럽 주요국이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세계대전 주적 독일과 군사협력 강화
스타머 총리는 27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 도착해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유럽과의 관계 재설정의 기회는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데 지금 그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취임 직후에도 브렉시트를 “망친(botched) 합의”라고 언급하며 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번 독일 방문에서 특히 군사협정 체결 의제를 집중 논의하기로 했다. 빠르면 내년 초 합의를 마치고 같은 해 7월 공동 선언문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 영국과 프랑스가 체결한 국방·안보 협력 ‘랭커스터하우스 조약’과 마찬가지로 양국 연합군 창설, 핵미사일 연구센터 공유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망했다.
영국이 제1, 2차 세계대전의 주적(主敵) 독일과의 군사협력에 나선 것은 그만큼 서유럽의 안보 상황이 불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는 27일 “재집권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강한 방위비 증액 압박을 단행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모든 나토 회원국이 적어도 국내총생산(GDP)의 3%를 방위비로 지출해야 한다”며 현재 많은 회원국의 분담 비율인 2%는 ‘세기의 도둑질’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 라브로프 러 외교 “3차대전” 위협
스타머 총리는 독일 방문에 이어 28일 프랑스 파리를 찾기로 했다. 이날 열리는 패럴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갖고 비슷한 사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머 총리와 노동당은 또한 7월 총선 당시 점증하는 안보 위협에 맞서 의무복무제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 또한 2011년 폐지했던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자국군 병력을 늘리기로 했다.
러시아의 최근 행보는 유럽 주요국의 이 같은 안보 우려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7일 최근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이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미국인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면 유럽에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위협했다. 그는 “서방이 성냥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불장난을 벌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계속하면 러시아 또한 서방에 맞불을 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