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자서전’을 출간한 저자 홍진휘 씨. 홍 씨 제공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한시를 모아 영문으로 번역한 시선집 ‘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자서전(A Confucian Autobiography of Tasan Chong Yagyong)’의 저자 홍진휘 번역가(61)는 이렇게 말했다. 다산이 결혼하러 한양 가는 배를 타던 1776년부터 75세가 된 1836년까지 60여년 동안 그가 쓴 시 중 수작 134편을 골라 담았다. 번역된 한시 원문은 1817행, 한자 수는 총 1만4408자에 달한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 고전 100선 영문 번역 사업(현 한국학술번역사업)’ 지원을 받아 올 4월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국제학술출판사 ‘브릴(BRILL)’에서 출판됐다. 전근대 한국 문학을 통틀어 한 인물의 시를 모아 영문으로 번역한 단행본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 두보와 도연명 등 중국 유명 문인들의 한시는 이미 영미 문화권에서 널리 번역돼 읽혀 온 것과 달리 한국은 영역된 인물 시선집이 없었다. 홍 번역가는 “한시 영역이 워낙 까다로워 연구자가 많지 않은 데다 한국 한문학의 위상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출간을 계기로 영미권 연구자들이 다산의 한시를 기존 중국 한시 연구들과 비교해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단순 영역본은 약 3년 만에 완성됐지만, 해외 출판사 측의 “시에 해설을 붙여 완성도를 높여 달라”는 요구를 반영하느라 실제 출판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홍 번역가는 ‘다산의 자서전’이라는 컨셉을 잡고 시의 의미는 물론 다산의 일생을 다루는 해설을 붙여 수년간 책을 보강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다산과 관계있는 인물 리스트도 책에 포함됐다.
책에는 다산의 인간적인 많이 등장한다. 19세 때 쓰인 시 ‘두치진(豆巵津)’에선 다산이 술과 고기, 생선 등 온갖 특산품이 몰려드는 장터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이익을 좇는 세태’를 탓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34세에 쓰인 시 ‘탄빈(歎貧)’에선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만족하지 못하는 복잡한 심사를 읽을 수 있다. 홍 번역가는 “그동안 민족주의 시각에 의해 ‘구국(救國)’의 실학자로만 알려진 이미지를 잠시 뒤로 하고 쓴 다산의 소소한 삶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