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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인사이트]시장경제 발달했던 中, 자본주의는 왜 발전 안 했을까

입력 | 2024-08-29 23:03:00



유럽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부흥의 과정은 1500년 전후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의 해상 진출과 약탈, 정복이 이어진 연쇄적 팽창과 지배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14세기 후반 본격화한 대항해시대는 17∼18세기 상업혁명과 중상주의를 촉발했다. 영국 산업혁명을 거쳐 산업자본주의는 세계적인 흐름이 됐고 이성과 과학, 진보와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승인하는 이념과 신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하던 시기, 중국에서는 ‘자본주의 없는 시장’이 최고조로 발달했다. 15세기에서 16세기로 넘어가던 시기에 중국의 시장경제 발전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일부 학자들이 ‘자본주의 맹아(萌芽)’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장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이는 없다. 맹아적 현상이 일부 나타났지만 ‘자본주의’라는 열매를 맺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왜 중국은 혁명적인 수준의 시장경제 발전을 겪고도 자본주의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의 분석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유럽 전반에 확산한 이유를 ‘윤리’와 ‘정신’으로 설명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려면 전통적 상업 관념을 타파해 나갈 ‘자본주의 정신’이 형성돼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확산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세속적 노동과 직업을 종교적인 ‘소명’ 차원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하면서 자본주의 정신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경건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근면’과 ‘검약’을 중시했고 이 가치들은 자연스레 부의 축적을 낳았다. 현세적 금욕주의의 현상적 결과로 부의 축적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이다. 나아가 베버는 엄밀한 ‘회계적’ 계산의 토대 위에서 합리적이고 계획적으로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자본주의 정신을 규정했다. 농부들의 자족 경제나 길드 수공업자들의 특권적 관례, 상인들의 모험가적 태도 등을 포괄하는 기존의 중상주의 정신과 명확히 구분했다.

자본주의 없는 시장이 왕성하게 발달한 중국 명·청 시대 상인들의 윤리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였던 중국학 권위자 위잉스는 중국 명·청 상인들에게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면과 검약, 정직에 해당하는 ‘불기(不欺·속이지 않음)’와 ‘성신(誠信·정성스럽고 참됨)’의 덕목이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상인 윤리는 우리나라에 인생 지침서로 널리 알려진 ‘채근담(菜根譚)’에 잘 드러난다. 채근담은 1610년 무렵 출간됐는데 저자 홍응명(洪應明)은 휘주 출신 염상(鹽商·소금상인)이면서 유학을 공부하며 사대부를 겸한 인물이다. 채근담에는 사대부가 아니라 상인에게 더 어울리는 조언이 여럿 나온다. 예를 들어 타인을 지나치게 믿다가 속지 말라거나 음침하고 말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절대 속마음을 털어놓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그렇다.

하지만 채근담에 비춰 보면 중국의 상인 윤리가 기존의 사회·경제 질서를 재편하거나 뒤흔들 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채근담에도 근면과 검약은 중요한 윤리로 제시되지만 이른바 ‘군자의 몸가짐’을 지키는 덕목일 뿐 부의 축적을 낳는 가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부를 축적하려는 시도는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도구로 여겨졌다. 정직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정직 역시 강조되긴 하지만 실제 내용은 ‘속지 말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타인을 쉽게 믿지 말라는 것으로, 당시 중국 사회와 상거래에서 그만큼 속고 속이는 일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 정신에 이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상인들의 재력과 영향력이 커진 것은 맞지만 이전 시대와 구별될 만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부의 축적에 대한 관념 역시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중국이 획기적인 시장 경제 발전을 겪고도 자본주의 체제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98호(8월 1호) “상인 윤리와 ‘채근담’의 한계”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chokra@korea.ac.kr
정리=백상경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