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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실익은 없고 갈등만 키울 것[동아시론/최준선]

입력 | 2024-08-29 23:12:00

경영학 교수들도 잘 모르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주주 사익 위해 회사 손해 끼치면 지금도 불법
‘총주주’ ‘비례적 이익’ 넣는 법 개정 재고해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근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과 관련해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자는 논의에 야당은 물론이고 일부 정부 관계자까지 뛰어들었다. 상법상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총주주 등으로 넓히면 투자자 신뢰가 회복돼 기업이 제 가치를 인정받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 개정은 실익은 없이 불필요한 소송 남발만 부를 공산이 크다.

법률 용어는 일반 어법과 쓰임새가 다른 경우가 많다. 상법에 나오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란 말이 그런 경우다. 이 용어는 다수의 경영학 교수들조차 오해하는 것처럼 ‘이사가 회사에 충성할 의무’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회사 이익을 희생, 사익을 도모해선 안 되는 의무’라는 게 정확한 의미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대표이사가 자기 소유 토지를 회사의 비용을 들여 대지로 조성한 후 회사에 매도한 행위는 충실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판단한 적이 있다. 이렇게 이사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재산을 편취하는 것이 바로 충실의무 위반이다. 상법은 △회사가 영위하는 업무를 이사가 별도 회사를 만들어 영업하는 것(경업)의 금지 △회사와 이사 사이에 재산거래(자기거래) 금지 △마땅히 회사가 해야 할 사업을 이사가 가로채 개인사업을 하는 것(회사의 기회 및 자산 유용) 금지 등으로 충실의무를 더 구체화해 놨다.

이사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제3자, 예컨대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희생하는 것도 당연히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다. 이 규정을 어겨 문제를 일으킨 이사에겐 손해배상 책임, 형사상 배임·횡령의 죄를 물을 수 있다. 지배주주 편을 들어 회사에 불이익이 되는 행위를 한 이사에게 손배 책임을 묻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상법을 고칠 필요가 없다.

상법 개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물적분할, 인적분할, 합병 등 회사의 사업구조 개편(리밸런싱) 과정에서 지배주주만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는 이익이 없거나 피해를 보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들 한다. 이를 위해 회사 외에 ‘총주주’를 위해,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이사들이 충실의무를 지도록 규정을 고치자고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대주주의 독식을 막아 소액주주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사와 회사의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가 아니라 ‘합법의 범위 안에서 발생하는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이해충돌’로 보는 게 맞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총주주를 위하여’란 문구를 상법에 넣자고 하는데 무의미한 일이다. 한국에선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보는 ‘주주 우선주의’가 법과 현실을 지배하는데, ‘이사가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건 결국 주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총주주 재산이 바로 회사의 재산인 만큼 법을 고치나 안 고치나 마찬가지다. ‘총주주’를 위해 이사가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도 새로운 의미는 없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측이 이런 상법 개정을 ‘추상적이고 선언적 규정에 그칠 것’이라고 평가하는 게 그런 이유다.

같은 당 정준호 의원이 제안한 ‘비례적 이익’이란 문구도 문제다. 비례란 두 변수가 일정한 비율로 달라지는 걸 뜻한다. 동시에 증가하면 정비례고, 감소하면 반비례다. 그런데 ‘비례적 이익’ 문구를 넣자는 주장의 취지는 적은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의 이익을 더 두텁게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반비례적 이익’이란 표현이 맞을 텐데, 형용 모순이다. 게다가 ‘주주평등의 원칙’을 통해 이미 주주의 비례적 이익은 보장되고 있다.

기업가치를 높이자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있는 것처럼 틀린 진단을 내리면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소액주주들의 기대만 부풀리고 분노를 부추길 뿐이다.

법리에 맞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충실의무 조항의 개정은 함부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지난주 한국기업법학회와 한국상사판례학회의 공동 학술대회에서 만난 일본의 상법학자들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법 개정 논의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일본 회사법은 한국에 앞서 이사 충실의무를 도입했지만, 이런 엉터리 같은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

현재 진행 중인 상법 개정 논란은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갈라치기 해 사회적 갈등을 키울 뿐 증시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섣불리 법을 고쳤다간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과 사회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경영 일선에서 심한 혼란만 일으키게 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