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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화된 소각장이 친환경 스키장으로

입력 | 2024-08-30 03:00:00

[공간을 통한 더 나은 일상/우리들의 공간 복지]
〈7〉덴마크 코펜하겐 ‘아마게르 바케’

산책로-암벽장 갖춘 자원회수시설
쓰레기 소각하고 에너지도 생성
기피시설이 지역 대표 랜드마크로
2021년 ‘올해의 세계 건축물’ 선정
연간 5만명 방문…지역경제 활성화





‘아마게르 바케’ 전경 사진. 과거 낡은 소각장이던 부지가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다목적 시설로 탈바꿈했다. 르케잉엘스그룹(BIG) 제공

15일(현지 시간)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시청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아마게르 지역.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코펜하겐에 우뚝 솟은 굴뚝이 눈에 띄었다. 언뜻 새로 지은 공장 같아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슬로프와 산책 코스, 클라이밍 벽 등이 있는 종합 레저스포츠 시설에 온 것 같았다. 연간 방문객만 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건물은 자원회수시설(폐기물 소각장 겸 열병합발전소) ‘아마게르 바케’다. 거대한 미끄럼틀을 닮은 언덕 모양 때문에 일명 ‘코펜힐’(코펜하겐의 언덕)로 불린다. 야코브 시몬센 아마게르 바케 운영사(ARC) 대표는 “아마게르 바케는 친환경 폐기물 소각 발전소의 역할뿐만 아니라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고 말했다.

● 소각장에 스키장, 암벽장, 카페 조성

코펜하겐시는 2017년 폐기물 관리와 에너지 생산,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연면적 4만1000㎡(약 1만2400평) 규모의 아마게르 바케를 조성했다. 준공 40년이 지나 노후화된 소각장을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다목적 시설로 재편한 것이다. 코펜하겐시 관계자는 “악취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낡은 소각장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많았다”며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소각장을 첨단시설로 만들고 외부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 레저시설로 꾸며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마게르 바케’에서는 난이도별로 구성된 4개 슬로프에서 무료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르케잉엘스그룹(BIG) 제공

아마게르 바케의 건물 높이는 85m로 스키장의 총 길이는 450m다. 최고 경사도(45%)를 포함해 4개의 슬로프 코스가 있는데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실력에 맞춰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이날도 수십 명의 시민들이 스키를 타며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인근 주민 루카스 씨는 “스키를 한 번 타려면 스웨덴까지 3시간을 이동해야 했다”며 “아마게르 바케 덕분에 눈과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무료로 스키를 탈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스키 슬로프 옆 건물 꼭대기 공원과 지상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뛰거나 걷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시 ‘아마게르 바케’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이면 코펜하겐시뿐만 아니라 인근 스웨덴 말뫄시까지 조망할 수 있다. 코펜하겐=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이 건물 벽면에는 높이 85m, 너비 10m의 세계 최대 규모 인공 암벽장을 만들어 클라이밍을 즐길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 정상에 가면 전망대와 커피숍이 있는데 코펜하겐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코펜하겐에 사는 이다 씨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코펜하겐은 물론이고 스웨덴 말뫼까지 구경할 수 있다”며 “답답하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 첨단시설로 오염물질 배출 ‘제로’

아마게르 바케는 덴마크의 세계적 건축가 뱌르케 잉엘스가 설계했다. 아마게르자원센터가 2010년 흉물스러워진 기존의 발전소를 대신할 새 건물 디자인을 공모할 당시 전 세계에서 36개 설계사가 참여했다. 뱌르케잉엘스그룹(BIG)은 발전소 여러 동을 키 순서로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스키 슬로프를 얹어 시민들에게 공간을 개방하겠다는 설계안을 제시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마게르 바케는 2021년 세계건축축제(WAF)에서 선정한 ‘올해의 세계 건축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BIG의 파트너 건축가 브라이언 양 씨는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덴마크의 지리적 특성을 역으로 착안해 코펜하겐에 산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뒀다”며 “소각장이란 기피 시설을 사람들이 가고 싶고, 찾고 싶은 활동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통했다”고 설명했다.

오염물질 관리 시스템도 우수 사례로 꼽힌다. 소각 과정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의 경우 평균 배출량이 ㎥당 14.65mg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연합(EU)의 최대 허용치인 400mg의 약 3.66% 수준이다. 시몬센 대표는 “이곳은 지리적으로 덴마크 왕족이 사는 아말리엔보르 성에서 2km 거리로 가까운 데다 인근에 458가구가 살고 있어 오염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된다”며 “코펜하겐시가 2025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 제로 도시’가 되겠다는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게르 바케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5∼25t 트럭 250∼300대가 소각장을 오가며 1500t 정도의 폐기물을 배출한다. ARC 관계자는 “연평균 63만 t의 폐기물로 15만여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고, 8만여 가구에 지역 난방열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아마게르 바케는 소각 과정에서 생산된 열과 전력을 인근 지역에 판매해 연간 300억 원 규모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들은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등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ARC 관계자는 “시민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제기되는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코펜하겐=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