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소, 재판 등 사법 작용의 대상이 되는 일’. ‘사건’의 사전적 정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사건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 기자들이 전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중,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 이야기들에 대해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1월 7일 오후 10시 50분 경 경기 용인의 어느 편의점.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주말 밤이었다. ‘딸랑’ 문소리와 함께 벌컥 열린 편의점 문. 그 곳엔 피칠갑이 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우즈벡키스탄 출신 부리예프 씨(가명·당시 27세)였다. “도와주세요..” 한겨울임에도 부리예프 씨는 반바지 차림이었고, 신발조차 신지 못한 상태였다. 웃옷은 어느 길가에 정신없이 벗어뒀다고 했다. 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상반신이 피범벅이었다.
무슨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 없는 상황. 놀란 편의점 직원들은 부리나케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 112 신고 전화를 넣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길 몇 분. 부리예프 씨는 경찰에 “내 사촌형이 집에서 날 갑자기 찔렀다”고 진술하고 집주소를 알려준 뒤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호송됐다. 앞으로 한 달, 부리예프 씨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가 시작된 밤이었다.
● 칼부림으로 끝맺은 사촌 형과의 ‘위험한 동거’
하지만 위험한 동거였다. 용인에 위치한 반지하의 6평짜리 원룸 방은 좁고 습했다. 둘 다 워낙 덩치가 컸던 탓에 두 사람은 개인공간이 없다고 느꼈다. 생각보다 생활 습관도 안 맞았다. 상대적으로 사회활동이 활발했던 부리예프 씨는 바깥생활을 즐겼지만 후사노프 씨는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후사노프 씨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에서 하는 게임이 그에게는 낙의 전부였다고 한다. 부리예프 씨는 당시에 몰랐다. 사촌 형이 정신병을 앓고 있던 사실을. 후사노프 씨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객이 전도됐다.
사달은 부리예프 씨와 후사노프 씨가 함께 집에 머물던 토요일 밤에 일어났다. 그날 따라 후사노프 씨가 기분이 안 좋아보였다고 한다. 부리예프 씨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후사노프 씨가 영 못마땅해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부리예프 씨.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부리예프 씨의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목에서 뜨근한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의자를 뒤로 넘어뜨린 부리예프 씨는 이내 후사노프 씨가 자신의 눈을 가리고 목을 찔렀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렇게 형과 엉켜 몸싸움 하길 수십 초, 부리예프 씨는 극적으로 형으로부터 빠져나와 집을 탈출했다. 그렇게 황급하게 집을 나와 도착한 곳이 편의점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1월7일 부리예프 씨가 경기 용인의 한 편의점에 들어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모습. 검찰 제공
● “피해자인 내가 살인 용의자라니”…구치소에서 보낸 결혼식 당일
‘피해자인 내가 살인 용의자라니’ 진짜 트라우마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부리예프 씨는 목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도 8일간 경찰에서 구속상태로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부리예프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수술하고 나왔기 때문에 그때 한 달은 병원에 있어야 했어요. 근데 치료를 안했어요. 막판에서야 했죠. 그래도 마지막에(라도 치료를) 한 건 고마워요” 라고 했다.
문제는 구속 기간 내내 회사와 가족, 여자친구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할텐데’ ‘이러다 잘릴텐데’ 부리예프 씨는 내내 불안했다. 심지어 결혼식 날도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친구로서는 결혼식을 앞두고 연락 두절이라니, 얼마나 황당할까 싶었다. 그러나 방법은 없었다. 부리예프 씨는 결국 결혼식 당일을 수원구치소에서 보내야했다. 그를 변호할 의무가 있는 국선변호인이 선임되긴했지만 접견조차 하지 못했다. 부리예프 씨는 “아무래도 제가 외국인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잘 안 해준 거죠.”라고 말했다.
●검찰의 전면 재수사, 억울함이 풀렸다
땅이 꺼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나. 부리예프 씨에게는 천만 다행히도,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이 전면 재수사를 결정했다. 사건을 넘겨 받은 최희정 당시 수원지검 검사가 사건을 살펴보다가 의아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최 검사는 경찰이 보내온 ‘변사자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주저흔’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저흔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는 흔적이었다. 최 검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감정서와 혈흔 감정서 등을 요청하고 사건을 처음부터 재구성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국과수 부검감정서
혈흔 감정서도 부리예프 씨의 무고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사노프 씨가 사망할 날 당시 부리예프 씨가 입고 있던 반바지 등 옷가지들에서 후사노프 씨의 피는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부리예프 씨가 후사노프 씨를 살해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 검사가 최종적으로 자문을 구한 법의학계의 권위자 이정빈 교수 역시 “이건 자살”이라고 말했다. “사망한 후사노프 씨의 목 부근 자창이 좌우 5.5cm 몰려 있는데, 이건 자해할때나 가능한 것”이라고 했던 것. 실제 격렬한 몸싸움 끝에 남이 목을 찔렀다면 공격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는데, 후사노프 씨의 시신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검사는 결국 부리예프 씨의 구속을 취소하고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최 검사는 “모든 의문이 해소됐기 때문에 서둘러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알고보면 사실은 부리예프 씨가 피해자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 부장님과 상의 하에 피해자 지원을 하기로 결정해 부리예프 씨의 치료비 전액을 배상해주고, 주거 지원비 석 달치인 150만 원을 지원했었다”고 회상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최희정 현 대구지검 여성아동조사부 부장검사.
부리예프 씨는 “물론 힘들었던 일이지만, 이제는 다 잊었다”고 말했다. 부리예프 씨는 현재 서울에 거처를 잡고,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여자친구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고 한다.
부리예프 씨의 마지막 말이다. “제가 외국인이어서 우리나라(우즈벡키스탄)으로 도망칠까봐 잡은거 알아요. 그래도 한 명만 있으면 돼요. 그럼 문제 없어요. (최희정) 검사님은 날 믿어주셨어요. 지금도 계속 감사드려요. 이제는 외국인 차별 없는 세상 돼야죠.”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구민기 기자 k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