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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송인호]‘괴담경제학’ 전문꾼들이 판친다… 정보를 의심하라

입력 | 2024-08-30 23:12:00

2008년 “라면 수프에 광우병 소뼈” 업계 흔들
현재도 경제 사회적 이익 노린 괴담 세력 활개
진영 의존 사고 경계하고 정보 의도 따져봐야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



최근 한국 라면 산업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라면의 본고장인 일본까지 진출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4월 라면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전년 대비 46.8% 증가했고, 매월 1억 달러 수출을 기록하며 올해 11억 달러 이상의 최고 수출 기록 달성이 예상된다. K라면이 이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러한 K라면의 성장 뒤에는 삼양식품의 맹활약이 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양식품은 뼈아픈 경험을 거쳤다. 1963년 삼양라면은 한국 최초의 라면으로 출시되면서 국민적 인기를 끌었고, 오랜 시간 동안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다 1989년 한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접수됐다. 삼양라면이 공업용 우지를 사용해 면을 튀겼다는 것이다. 이 ‘우지 파동’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때 삼양식품은 라면 100만 박스 이상을 폐기해야 했고, 직원도 1000여 명 이직시키는 등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시장 점유율은 31%에서 10% 이하로 추락했고, 회사는 수백억 원의 적자에 시달리며 결국 법정관리를 받았다. 1995년 5년 8개월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서울고등법원은 삼양식품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이미 회사는 많은 것을 잃은 후였다.

2008년 K라면 산업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라면 수프에 광우병 걸린 소뼈가 들어 있다”란 근거 없는 풍문이 퍼지면서다. 이는 단순한 풍문을 넘어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으로까지 번졌고, 라면 국물 섭취가 광우병, 성장 이상, 생식 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황당한 괴담으로 이어졌다.

당시 라면 업계는 생존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사활을 건 싸움에 나섰고, 쉽지 않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다행히 사태는 진정되었다.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 상품으로 자리 잡은 K라면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러한 괴담의 확산은 현대사회에서 정보의 신뢰성과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워 준다. 과학계에서는 GMO 섭취와 인체 유해성 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바 없으며, 식품 가공 과정에서 유전자가 파괴돼 안전하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 반응이 우선시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괴담의 확산과 영향력은 이제 단순한 소문의 차원을 넘어 사회경제적 이슈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 개념과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는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과정에 내재한 편향성을 밝혀냈다. 이는 괴담이 왜 쉽게 퍼지고 믿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기준점 편향’은 괴담 확산의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다. 어떤 정보가 제시되면, 그 진위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진영 리더’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진영 의존성’은 괴담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괴담 세력들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묘히 활용한다. 그들은 ‘괴담 경제학’의 전문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과 집단 심리를 교묘히 조작한다.

중요한 사실은 괴담 확산의 목적에는 항상 경제적, 사회적 이익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선의 이념, 정의 실현, 약자 배려 등의 고귀한 가치를 내세우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편향적 이익 추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즉, 사실을 과장하거나 변형하면서 공포감을 조장하고, 특정 이슈를 선동하기도 하면서 진영의 이익을 추구한다.

먼저 우리는 단 한 번의 의혹만으로도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의 명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기업이 아니라 국가라면 어떻겠는가. 괴담의 경제학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개인의 인지적 한계를 인정하고, 집단 사고의 위험성을 경계하며, 항상 정보의 출처와 의도를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판단력을 기르고, 근거 없는 괴담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한 미디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보를 이해하고 어떤 정보도 스스로 비판적으로 평가할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학교 교육 시스템부터 전환해야 할 것이다.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