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MZ세대 중심으로 확산하는 금주 문화 “술 꼭 마셔야 하나” 의문서 시작… 세계적으로 주류 기피현상 늘어나 OECD 1인당 주류 소비량 하락세… 美 18∼34세 10명 중 4명꼴로 금주 주류 기업, 무-저알코올 제품 개발… 각종 축제에선 ‘무알코올 공간’ 마련 “2027년까지 연 7% 시장 성장할 것”
《“술은 힙하지 않아” MZ세대 금주 문화 ‘소버 큐리어스’ 유행
국내외 젊은층 사이에서 ‘소버 큐리어스’ 열풍이 번지고 있다. ‘술 취하지 않은(sober)’이란 형용사와 ‘궁금한(curious)’이란 단어를 합친 말로 ‘술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을 뜻한다. 소버 큐리어스를 실천하는 MZ세대들은 “맑은 정신으로 깨는 아침과 건강한 몸을 얻었다”고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금주 도전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기도 한다. 술 소비가 줄자 주류업계는 무알코올, 저도수 주류 등을 선보이고 있다.》
# 8년 차 직장인 김모 과장(31)은 지난봄부터 3개월 넘게 금주를 이어 오고 있다. 이전까지 업무와 약속 등으로 일주일에 4∼5회 술을 마시던 김 과장은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자 아예 술을 끊기로 결정했다. 김 과장은 “아침마다 정신이 맑아지는 등 ‘술 없는 삶’에 좋은 점이 많다”며 “금주가 유행하며 친구들과 만날 때도 술 없이 마무리하는 모임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 4년 차 영업직 주모 대리(29)는 테니스 모임 멤버 3명과 함께 두 달째 금주를 실천하고 있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테니스 모임에서 술 얘기를 하던 중 다 같이 술을 끊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주 대리는 “술을 줄이고 싶어도 혼자선 몇 차례나 실패했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하니 연대감이 든다”고 했다.
‘꼭 술을 마셔야만 하는가’란 의문에서 비롯된 금주 트렌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일상과 사교 생활에서 음주 없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회운동으로까지 자리 잡은 소버 큐리어스는 일상생활을 넘어 주류 회사의 마케팅 전략마저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 “술보단 건강”… 확산하는 금주 문화
소버 큐리어스에 특별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소버 큐리어스를 두고 “알코올이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충분히 인지하고 심사숙고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엄격하게 측정하는 대신에 자신이 취할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게 소버 큐리어스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팬데믹 이전부터 소버 큐리어스가 확산된 미국에서는 현재 소버 큐리어스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틱톡,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Sober Curious’를 검색하면 ‘내가 금주를 결정한 이유’ ‘금주 N일차 후기’ 등 금주에 대한 자기 고백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댓글창에서도 ‘N개월째 금주 중’ 등을 올리며 서로 금주를 실천하면서 권유하고 연대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독자들끼리의 소규모 모임 등에서만 이뤄지던 자기 고백과 치유가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가면서 좀 더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버 큐리어스가 미국보다 다소 늦게 유행하고 있는 국내의 경우 운동 인구 증가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주 1회 30분 이상 운동하는 생활체육 참여율은 2012년 35.0%에서 지난해 52.0%까지 늘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30대 위주로 보디빌딩 인구가 늘어나며 생활체육 인구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20대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2∼3번 술을 마시던 직장인 유모 씨(30)는 지난해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이래 금주를 이어 오고 있다. 유 씨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소비된다는 말을 듣고 술을 끊었다”며 “회식 자리나 친구 모임에서도 운동하는 친구들은 비슷한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술로 유명한 국가에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주류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자국 맥주 판매량은 83억8000만 L로 1993년 판매량 대비 25.2% 줄었다. 일본은 맥주 소비량이 30년 전 대비 25% 수준으로 줄었다.
주류 소비 감소는 MZ세대가 이끌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18∼34세 인구 중 술을 마신다고 답한 인구 비율은 62%로 20년 전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낮아졌다. 일본 여론조사기관 빅로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20∼24세 중 80%가량이 ‘평소에 술을 먹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한편으로는 음주 문화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구 교수는 “음주는 적절히 이용한다면 사교 생활에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개인의 선택에 맡기되 술을 먹는다고 전면 터부시되는 분위기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무알코올’이나 ‘맛있는 술’이 뜬다
술이 주로 소비되는 축제에서도 무알코올 트렌드는 확산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올해 4월 열린 연내 최대 축제 ‘송끄란’에서 무알코올 구역을 정하는 등 ‘술 없는 축제’를 추진했다. 독일의 대표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도 올해부터 최초로 무알코올 맥주 전용 공간을 조성한다.
축제를 통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던 주류 회사들은 무알코올 소비자를 잡기 위한 마케팅에 나섰다. ‘칭따오’ 맥주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 2023’에서 기존 라인업을 모두 제외하고 무알코올 제품만을 후원하며 관련 제품을 집중 홍보했다.
관련 시장도 꾸준히 성장세다. 시장조사기관 IWRS에 따르면 2018∼2022년 전 세계 무·저알코올 시장은 매년 5%가량 성장했으며 2027년까지 연평균 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술을 버리지 못한 소비자들도 ‘맛있는 술’을 찾아 나서고 있다. 소주와 맥주로 크게 양분되던 획일적인 주류 소비 대신에 전통주, 와인, 증류주 등 다양한 종류의 주류를 찾고 있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aT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와 소주의 월평균 음주 비중은 5년 전에 비해 각각 2.1%포인트, 6.4%포인트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전통주와 기타 주류의 비중은 늘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술의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문화로 트렌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의 주류 소비 트렌드는 건강에 대한 관심과 MZ세대의 선호가 반영된 것”이라며 “술을 마시지 않는 인구가 늘어나는 동시에 남은 음주 인구도 만취하지 않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