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정치부장
‘안응칠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1894년 한국 각 지방에서는 소위 동학당이 곳곳마다 돌아다니며 관리를 죽이고 민중의 재산을 약탈했다. 나의 아버지는 동학당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의병을 일으켰다.” 안중근 의사는 자서전에 그해 12월 황해도 청계산에서 ‘동학당 괴수 원용일’ 무리와 전투를 벌여 대승한 일을 적었다.
‘백범일지’에 나오는 얘기다. “나의 본진이 있는 (황해도) 회학동과 안 진사의 청계동이 불과 20리 거리라 내가 무모하게 청계동을 치려다 패하면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니 안 진사가 나를 위하는 호의로 이 밀사를 보냈다는 것이다.”
안 진사는 안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이다. 동학군과 전투를 벌이며 적개심을 드러낸 안 의사와 동학군이었던 김구 선생이 한때 서로 적으로 대치한 셈이다.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역사 진영 싸움에 갇힌 응급환자 같은 한국
최근 가족이 아파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에 갔다. 새삼 1945년 귀국한 김구 선생의 거처이자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열렸던 경교장이 눈에 띄었다.
경교장 내부의 전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강조했다.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건국 시점이라는 진보 진영 일각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보수 진영 일각은 1919년 건국설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임시정부는 국민 영토 정부 주권 요소를 갖추지 못했고 건국은 1948년 정부 수립 때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논란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둘러싸고 다시 벌어졌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김 관장이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한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광복절은 둘로 쪼개졌다. 김 관장은 최근 국회 상임위에서 ‘1945년 광복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쓴 ‘끝나야 할 역사전쟁’을 들춰 봤다. 그는 1945년 8월 15일은 “복국(復國)의 임무를 끝내지 못한 해방기념일이고 당시 지도자들은 1948년을 독립 광복 건국기념일로 인식했다”는 취지로 썼다.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1919년 건국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광복 80주년, 윤 대통령이 국론 분열 끝내라
건국절 논란의 기원은 임시정부 운영과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이승만과 김구의 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 진영은 이승만이 국부라 하고 진보 진영은 김구가 국부라 한다.
해방 정국 이승만과 김구의 갈등에서 시작된 질기고 질긴 국론 분열의 역사가 지금 우리 사회를 ‘우파면 친일, 좌파는 반일’이라는 프레임으로 갈라 놓고 있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 사례처럼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건국절 논란은 그런 역사를 포용하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너’의 역사로 적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기자회견에서 “1948년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언해 소모적 분열을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떠나며 광복 80주년을 앞두고도 이 역사의 진영 싸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응급 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