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1일부터 9일까지 9일간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전투를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양측의 전쟁이 장기화한 가운데 이 여파로 가자지구 내 소아마비 백신 접종이 어려워져 최근 환자가 속출하자 ‘일시 휴전’에 합의했다. 이미 지난달 31일부터 가자 내 일부 지역에서는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잇따른 양측 교전으로 두 곳에서 모두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31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 인근 지하 터널에서 수습한 시신 6구가 전쟁 발발 당일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이었다고 밝혔다. 이 중 한 명은 23세 미국인 허시 골드버그폴린(23)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5명 또한 가자지구 인근 노바 음악축제장 및 베에리 키부츠에서 납치된 민간인이다.
● 64만 명 접종 위해 ‘일시 휴전’
유엔 측은 기존에 백신을 맞은 10세 이하 어린이 또한 접종 대상이라고 밝혔다. 최근 확진자가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 백신 접종자라 해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오염된 물 등을 통해 감염되고 전염성이 강하다. 또 백신 접종 시기를 놓쳐 일단 증상이 발현되면 치료제가 없다. 전쟁 장기화로 보건 체계가 사실상 붕괴되고 위생 상태 또한 악화된 가자지구 내 미접종 아동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을 위한 휴전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스라엘 측을 강하게 압박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19일 이스라엘 현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을 때 이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하는 미국 내 비(非)백인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 측은 “전면 휴전은 아니다”라고 거듭 선을 그었다. 총리실은 31일 “백신 투여 가능 구역을 선별하고 접종 관련자의 통행만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살피고 있다. 2024.08.29 가자지구=신화/뉴시스
또한 이스라엘은 지난달 28일~1일 5일간 상대적으로 반(反)이스라엘 정서가 약한 서안에도 지상군을 투입해 ‘대테러 작전’을 펼치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서안에 대한 최대 규모의 작전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지난달 30일 최소 1만1000명이 거주하는 서안 내 제닌 난민촌을 포위한 후 전기와 물 공급을 차단하고 통금령을 내렸다. 제닌은 서안에서 반이스라엘 무장단체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서안에서의 양측 교전으로 최소 26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졌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식료품을 사러 외출했다가 이스라엘군의 저격으로 사살된 83세 노인도 있다. 이스라엘도 군인 1명과 경찰관 3명이 숨졌다.
한편 라파 인근 터널에서 찾은 하마스 납치 인질의 시신 6구를 둘러싼 이스라엘 내부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인질 유가족들은 네타냐후 정권이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아 인질이 희생됐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휴전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으며, 본인 또한 개인 비리로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휴전에 소극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서안으로 전선을 확대한 것도 네타냐후 정권이 극우 정당과의 연정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CNN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군이 구출에 성공한 인질은 8명에 불과하다. 인질 가족들은 풀려나지 못한 인질 97명 중 최소 33명이 숨졌을 것으로 본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