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완벽한 부모’ 내려놓기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아직 세 돌이 안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좋은 엄마, 좋은 아내,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으나, 자신은 도무지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할 때 잘 다루지도 못하고, 아이 마음을 잘 알아주지도 못하는 것 같다고. 남편도 잘 챙겨주고 싶은데, 집은 항상 엉망이고 식사도 시켜 먹을 때가 많단다. 그렇다고 회사에서도 그다지 능력 있는 직원이 아니라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이 엄마는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아내 역할도 잘하고 싶다. 회사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인생에서 주어지는 자신의 여러 가지 역할에서 기본 설정값이 모두 “제대로 잘 해내야 한다”이다. 그렇지 못한 지금 상황이 너무 괴롭다.
우리 주변에 이런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여러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에 자기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 잘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역할이라도 그냥 하면 된다. 그때그때 합당하게, 더 중요한 것에 조금 더 애를 쓰면 된다. 어떤 것에 조금 더 애를 쓰면, 나머지는 조금 덜 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이다. 일상에서 겪는 모든 상황, 모든 역할에 ‘제대로 잘’을 적용해버리면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크게 보면 사람의 인생 행로는 누구나 비슷한 것 같다. 유아기 때, 아동기 때 겪어야 하는 것은 겪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고통이 있다. 청년기에는 원한다면 연애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깨지기도 하고 헤어질 때도 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지만 곧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살아도, 때때로 다툴 때가 있다. 어쩌다 ‘괜히 결혼했네’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를 내 목숨을 바칠 만큼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찰나의 순간 ‘정말 징글징글하네. 힘들어 죽겠다’ 싶을 수 있다. 그러다가 또 아이를 보면서 진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인생을 마감하는 시간이 오면, 돈이 많아도 지위가 높아도 죽음을 앞두고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인생에서 희로애락을 다 느끼면서 산다.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가까운 사람과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걸 겪어나가고 있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요즘은 배에 모터를 달아서 물결의 방향을 자꾸만 거스르려고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럴 때는 그냥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육아하다가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거나 걱정되는 것이 생기면 “우리가 어떻게 해주면 아이들이 더 잘 클까?” 하면서 부부가 의논하면 된다. 관련 정보들도 찾아보고, 전문가의 말도 들어보면 된다.
살면서 드는 이런저런 고민은, 물어보고 의논도 하고 찾아보면서 겪어나가면 된다. 상황마다 지나치게 완벽하기 위해 몰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 지금 내 옆에, 내가 너무나 잘해주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사실을 느끼는 데 정신적인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다. 모든 역할을 제대로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너무 무겁다. 그러면 일상의 순간순간 발견할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한다. 잘하는 것보다 나의 가까운 사람들과, 내가 함께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