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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맘’ 되려다 ‘해피 맘’ 놓친다[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4-09-01 22:57:00

〈210〉‘완벽한 부모’ 내려놓기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아직 세 돌이 안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좋은 엄마, 좋은 아내,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으나, 자신은 도무지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할 때 잘 다루지도 못하고, 아이 마음을 잘 알아주지도 못하는 것 같다고. 남편도 잘 챙겨주고 싶은데, 집은 항상 엉망이고 식사도 시켜 먹을 때가 많단다. 그렇다고 회사에서도 그다지 능력 있는 직원이 아니라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요즘은 기본 설정값이 너무 높은 것 같다. 모든 것을 완벽 내지는 제대로 잘 해내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위축되고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제대로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은 너무 좋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열심히 성실하게 산다. 그런데 ‘제대로 잘’이 ‘완벽하게 다’ 해내야 하는 것으로 가면 삶이 너무 힘들다.

이 엄마는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아내 역할도 잘하고 싶다. 회사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인생에서 주어지는 자신의 여러 가지 역할에서 기본 설정값이 모두 “제대로 잘 해내야 한다”이다. 그렇지 못한 지금 상황이 너무 괴롭다.

그런데 사람은 다 잘할 수 없다. 사실 다 잘할 것도 없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남편은 챙겨줄 사람이 아니다. 같이 의논하고 살아갈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여러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에 자기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 잘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역할이라도 그냥 하면 된다. 그때그때 합당하게, 더 중요한 것에 조금 더 애를 쓰면 된다. 어떤 것에 조금 더 애를 쓰면, 나머지는 조금 덜 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이다. 일상에서 겪는 모든 상황, 모든 역할에 ‘제대로 잘’을 적용해버리면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크게 보면 사람의 인생 행로는 누구나 비슷한 것 같다. 유아기 때, 아동기 때 겪어야 하는 것은 겪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고통이 있다. 청년기에는 원한다면 연애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깨지기도 하고 헤어질 때도 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지만 곧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살아도, 때때로 다툴 때가 있다. 어쩌다 ‘괜히 결혼했네’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를 내 목숨을 바칠 만큼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찰나의 순간 ‘정말 징글징글하네. 힘들어 죽겠다’ 싶을 수 있다. 그러다가 또 아이를 보면서 진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인생을 마감하는 시간이 오면, 돈이 많아도 지위가 높아도 죽음을 앞두고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인생에서 희로애락을 다 느끼면서 산다.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가까운 사람과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걸 겪어나가고 있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인생은 나룻배를 타고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파도나 폭풍이 오지 않으면 물결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배가 흘러간다. 가다 보면 바위를 만날 때도 있고, 물살이 세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노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열심히 노를 젓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다.

요즘은 배에 모터를 달아서 물결의 방향을 자꾸만 거스르려고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럴 때는 그냥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육아하다가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거나 걱정되는 것이 생기면 “우리가 어떻게 해주면 아이들이 더 잘 클까?” 하면서 부부가 의논하면 된다. 관련 정보들도 찾아보고, 전문가의 말도 들어보면 된다.

살면서 드는 이런저런 고민은, 물어보고 의논도 하고 찾아보면서 겪어나가면 된다. 상황마다 지나치게 완벽하기 위해 몰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 지금 내 옆에, 내가 너무나 잘해주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사실을 느끼는 데 정신적인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다. 모든 역할을 제대로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너무 무겁다. 그러면 일상의 순간순간 발견할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한다. 잘하는 것보다 나의 가까운 사람들과, 내가 함께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