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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 보느라 지루할 틈 없어… 생각은 언제 하지?”

입력 | 2024-09-02 03:00:00

베르베르, 창의성 잃은 현대인 지적
하루 10장만 쓰며 매년 작품 펴내
최면속 시간여행하는 SF 신작 완성
내년엔 ‘키메라의 시대’ 국내 발간



다음 달 프랑스 현지에서 신작 ‘영혼의 왈츠’(가제)를 발표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는 “책과 이야기의 힘은 독자들이 상상하고 창조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열린책들 제공



“우리는 항상 컴퓨터나 화면 앞에 앉아 끊임없이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지루해할 시간조차 없고, 창의성마저 잃어버립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3)는 지난달 28일 이런 생각을 본보에 e메일로 전해왔다. 유튜브 쇼츠를 비롯한 자극적 영상에 중독돼버린 현대인들의 요즘 일상을 우려한 것. 그는 “책과 이야기의 힘은 독자들이 상상하고, 창조하고, 세상을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독서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34년 차 작가인 그는 여전히 부지런하다. 매년 10월이 되면 새 작품을 내놓는다. 다음 달 프랑스에서 신작 ‘영혼의 왈츠’(가제)를 내놓는다. 막바지 작업 중인 영혼의 왈츠는 최면을 통해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인 ‘내면의 여정(inner journey)’을 다룬 SF 소설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주인공은 지구를 덮쳐 오는 어둠의 세력에 맞서 시간을 오가며 다섯 영혼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빛과 사랑만이 어둠을 막을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에. 베르베르는 “주인공은 내적 여정을 할 수 있으면서도 지구를 구할 해결책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라며 “최근 몇 년간은 이 주제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왔다”고 했다.

그는 올해 6월 한국 시장에 번역돼 나온 ‘퀸의 대각선’(열린책들)에 대한 얘기도 했다. 책은 작가가 충무공 이순신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지정학적 소설로,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활동하는 두 여성 스파이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였으면서도 고유 영토와 언어를 보존한 한국의 역사를 떠올렸다고 했다. 베르베르는 “특히 이순신은 한국인의 용기와 기술, 개인적 원한을 뛰어넘는 공동체 정신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키메라의 시대’(가제)가 번역돼 한국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베르베르는 1991년 장편 소설 ‘개미’로 데뷔한 뒤 ‘뇌’ ‘신’ ‘나무’ 등의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7세부터 소설 습작에 나섰다는 그는 3500만 부가 전 세계에서 판매된 작가. 이런 원동력으로 그는 ‘작가의 규칙성’을 강조했다. 그는 “글쓰기는 마라톤이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라면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끊임없이 써야 진전이 있다. 규칙성은 작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 글을 쓰는데, 하루에 딱 장편 원고 10장을 쓰는 게 그만의 ‘루틴’이다. 그렇다고 ‘오전 근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 3∼6시에는 자료 조사를 하거나 소설 외 프로젝트를 하고, 오후 6∼7시에는 단편소설을 쓴다. 그는 “휴가, 생일, 또는 인생의 불행한 사건들로 인해 이 루틴을 방해받기도 한다”면서도 “글을 쓰는 장소와 시간을 바꾸더라도 글을 쓴다”고 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