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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병장, 격리 징계 17일만에 돌연사… 軍은 10개월간 쉬쉬

입력 | 2024-09-02 03:00:00

후임병의 ‘갑질’ 제보에 분리 조치… ‘15일 이내’ 규정 어기고 장기 격리
아침 점호도 안해 오후에야 발견… 유족 “영하 3.1도에 난방했나 의문”
10개월째 징계 안해 감싸기 논란… 軍 “수사 종결된 후 징계 마무리”





대북 첩보 수집 및 분석 임무를 수행하는 핵심 부대인 777사령부의 한 부대에서 전역을 한 달가량 앞둔 말년 병장이 후임병들과 분리 조치된 채 홀로 생활하다 돌연사한 것으로 1일 뒤늦게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병사 관리 부실 등의 책임이 있는 간부들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아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홀로 격리 17일째 돌연사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실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모 병장(사망 당시 20세)은 지난해 10월 26일부터 후임병들과 격리된 채 부대 본 건물과 100m 떨어진 임시 생활관에서 홀로 지내던 중 격리 17일째 사망했다. 사망한 김 병장은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1시 50분쯤 냉난방기 리모컨을 찾던 부대 간부가 발견했는데, 이불을 목 아래까지 덮은 채 똑바로 누워 자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김 병장이 실제 사망한 시간은 발견 시간보다 몇 시간 앞선 이날 오전으로 추정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김 병장의 사망 원인은 ‘미상’의 돌연사였고 ‘청장년급사증후군(사망할 병력 없이 돌연 사망)일 가능성’이 단서로 달렸다.

김 병장 소속 부대는 김 병장에게 괴롭힘이나 갑질을 당했다는 후임병의 제보가 들어오자 피해자와 김 병장을 우선 분리 조치하기 위해 김 병장을 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당시 격리 생활관으로 쓰던 임시 숙소에서 혼자 생활하도록 했다. 통상 이런 경우 내부 규정에 따라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를 타 부대로 전출을 보낸다. 그러나 김 병장의 경우 전역일이 지난해 12월 19일로 전역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아 부대 측은 부대 내에서 분리 생활하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군인사법은 병사에 대한 징계 처분 중 일정한 장소에서 비행을 반성하게 하는 근신은 15일 이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대 측이 규정을 어기고 장기간 격리 생활하게 한 것이 사망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김 병장, 사망 며칠 전 ‘너무 춥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문제의 격리 생활관은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유족 측은 탄원서 등을 통해 “아들이 생활하던 곳은 폐허 같은 건물로 온수도 나오지 않았고 기본적인 용품과 시설도 전무했다”며 “사망 당일 해당 지역 최저 기온이 영하 3.1도까지 떨어졌지만 난방기가 정상 작동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아들은 사망 며칠 전 당직 근무자에게 ‘너무 춥다’며 난방을 해달라고 건의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격리 후 당직 근무자가 순찰을 실시하지 않는 등 관리자는 무관심했다”며 “아침 점호만 했어도 아들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군사경찰 수사 결과로도 부대 간부들의 조치에 미흡한 점이 다수 발견됐다. 이에 올해 4월 군사경찰은 해당 부대에 부대장인 대령부터 중사에 이르기까지 간부 6명에 대해 비위 사실을 통보하며 징계를 요청했다. 그러나 1일 현재까지 징계는 확정되지 않아 일각에선 군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이 사건을 공론화한 허 의원은 “제대를 한 달 앞둔 병사가 홀로 방치된 끝에 사망한 지 300일 가까이 지나도록 유족들에게 사망 원인이나 사건 전말도 제대로 설명이 안 된 데다 책임자 징계도 없는 상황”이라며 “사망 사건 배경으로 군 내부의 여러 문제가 확인된 이상 해당 사건을 민간 수사기관에 이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사건이 군사경찰에서 군검찰로 넘어간 이후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아 징계를 못 한 것이지 징계를 미루거나 사건을 은폐하려던 것은 아니다”라며 “군검찰에서 수사를 종결하는 대로 징계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