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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는 어떻게 틱톡에서 ‘밈통령’이 됐을까

입력 | 2024-09-02 13:53:00

'코코넛 밈'으로 틱톡에서 인기스타 떠올라
깔깔웃음, 막춤이 젊은층에게 재미 요소로
해리스 캠프 소셜미디어팀도 Z세대가 주도



ⓒ뉴시스


지난 7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전(前)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번 대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세가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약 한 달 만에 놀라운 상승세를 연출해 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민주당이 우위에 섰다는 분석과 여론조사 결과가 적지 않다.

해리스 부통령은 어떻게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틱톡과 소셜미디어에서 젊은 세대들이 보내준 적극적인 지지가 상당한 동력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 그를 수식하는 두가지 단어가 있다. 바로 ‘코코넛’과 ‘브랫(brat·악동)’이다. 미국의 Z세대들은 틱톡에서 자발적으로 코코넛, 브랫과 관련된 밈(meme·유행 콘텐츠)을 만들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는데, 이게 ‘카멀라 돌풍’의 진원지였다.

코코넛 밈은 지난해 5월 있었던 백악관 연설에서 유래했다. 당시 해리스 부통령은 보편적 교육 기회 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대체 너희 젊은이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너희들은 그냥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니?”라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인용했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었지만 맥락상 살짝 뜬금없는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Z세대들이 찾아낸건 발언의 의도나 의미가 아니었다. 이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연설 도중 꾸밈없이 깔깔 웃는 모습에서 재미 요소를 발견했다.

코코넛 나무 발언과 웃음소리는 숏폼 콘텐츠로 재창작됐다. 해리스 부통령의 말투와 웃음소리를 따라하는 성대모사, 이를 노래와 합성해 만든 리믹스 음악, 막춤을 추는 모습을 덧붙인 영상 등 수많은 2차 창작물이 쏟아졌다. 어떤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복제와 재창작을 통해 오히려 재미와 매력으로 바꿔낼 수 있는 게 숏폼의 힘이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Z세대의 우상’으로 불리는 팝스타 찰리 XCX가 소셜미디어에 “해리스는 브랫(Brat·악동)”이라는 글로 지지를 표시한 것이다. 찰리 XCX의 정규 6집명이기도 한 브랫은 버릇없는 녀석, 악동 등을 뜻하는 단어다. 아주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오히려 이 칭호가 해리스 부통령을 더 젊고, 당당한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브랫 앨범의 디자인에 사용된 연두색과 검은 글씨는 이제 온라인 상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상징색처럼 인식되고 있다.

대부분의 온라인 유행이 그렇듯 코코넛과 브렛 밈은 자연발생적이었다. 80대인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미국의 절은 유권자들은 50대 여성 후보의 등장에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밈 문화를 소비했던 방식으로 그를 탐색했다. 이 과정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이력과 과거 발언, 인간적인 면모 등도 새롭게 조명됐다. 재미는 관심으로, 그리고 지지로 점차 바뀌었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등장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층의 반응은 다소 다르다. ‘틱톡 챌린지’ 세대는 새로운 소재, 처음 벌어지는 장면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여성층의 지지가 해리스 부통령에게 급격하게 쏠리면서 돌풍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호칭인 ‘매덤 프레지던트’(Madam President)라는 문구가 적힌 여성용 티셔츠가 온라인 상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해리스 캠프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해리스 캠프의 소셜미디어 홍보가 더 기민하고 젊은층의 감각에 맞게 전개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핵심은 온라인 상의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상황적합한 메시지와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밈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호응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캠프 디지털팀을 이끌고 있는 롭 플래허티 캠페인 부매니저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은 선거 선전물 같은걸 만들지 않고,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윙크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공식 틱톡 계정을 개설했을 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얼마나 불안정한 인물인지를 알리는 영상이 많이 게시됐다. 하지만 추격에 성공했다고 판단된 현 시점에서는 후보의 인물 경쟁력과 매력을 알리는 콘텐츠의 비중이 높아졌다. 중도층과 무당층으로 지지세를 확장해 가겠다는 뜻이다. 또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로 찾아오는 캠프 틱톡 계정에서는 여전히 ‘트럼프 저격’ 콘텐츠도 생산하고 있다.

최근의 영상들을 보면 해리스 부통령이 안정감 있는 리더라는 점, 인종·성별·정당에 관계 없이 모든 미국인을 대변한다는 점, 일반적인 미국 중산층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점, 따뜻한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을 부각한다. 복잡한 설명보다는 이미지나 음악을 이용해 감각적으로 후보를 그려낸 Z세대 맞춤형 숏폼 콘텐츠가 많다.

후보로 선출된 이후 공식 틱톡 계정에서 가장 많이 조회된 영상은 정치와 무관한 내용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이 초콜릿 캐러멜 케이크를 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2일 현재까지 1360만회가 조회됐다. 이번에는 그가 옆 사람에게 케이크를 권하며 ‘달콤한 것좀 드세요’(get something sweet)라고 말한 것이 댓글창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마치 할머니가 손자한테 하는 말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다.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낸 주역은 Z세대였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해리스 캠프 소셜미디어팀에는 12~27세의 팀원 약 17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운동 기간 중 화제가 된 순간들을 편집해 숏폼 영상을 만들고 있는데 종종 윗선의 승인 없이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코코넛 밈과 브랫 밈도 이들이 채택하면서 더 큰 호응을 얻게 됐다.

플래허티 부매니저는 소셜미디어팀을 ”열혈 25세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들이 플랫폼의 원래 주인들이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전략을 주도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틱톡은 미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정치 관련 정보를 얻는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의 미국인 중 48%는 정치 이슈를 확인하기 위해 틱톡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응답자의 88%는 크리에이터가 최근의 뉴스에 대해 다룬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답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