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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프랑스서 ‘직지심체요절’ 찾아낸 역사학자 박병선

입력 | 2024-09-02 22:48:00



정확한 이름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 고려 우왕 재위 시기인 1377년 간행된 이 책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지만 현재 직지가 소장된 곳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입니다.

구한말 한국에서 고문서 수집에 열을 올렸던 주한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여러 고물품과 함께 직지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후 직지는 다시 앙리 베베르라는 골동품 수집가에게 팔렸고, 베베르는 죽기 전 “직지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실 직지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기, 인근 중동지역에서 워낙 많은 유물들이 들어오던 때라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장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묻혀 있던 직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람은 역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1923∼2011·사진)입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가 됐습니다. 스승 이병도 전 문교부 장관의 당부에 따라 구한말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던 중 우연히 직지를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직지는 단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여러 고서 중 하나’로만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박 박사의 끈질긴 연구가 국내외 학계의 관심과 연구를 불러일으켰고,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인류 문화에 혁명적 전환점을 가져온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성경 금속활자본보다 무려 78년 앞선 것이었습니다. 직지는 마침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됩니다.

1993년 한국에 온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때 직지를 비롯해 다른 고서적 반환 문제도 함께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외규장각 의궤는 완전한 소유권 반환이 아닌 5년마다 갱신하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돌아왔고 직지는 돌려받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반대에 부딪혔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직지는 약탈품이 아니라는 이유가 컸습니다. 프랑스 측의 반환 거부 통보에 나름의 명분은 있는 셈이지요. 9월 4일 ‘직지의 날’을 맞는 우리로서는 참 씁쓸한 일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