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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노 팔찌, 밤행사 땐 긴 장갑”… 상류층 차별화 무기 된 에티켓[설혜심의 매너·에티켓의 역사]

입력 | 2024-09-02 22:57:00

도덕 포함했던 ‘매너’와 달리, 표피적 형식에 집중한 에티켓
중류층 부상하자 상류층이 강조
‘루트리지 에티켓 매뉴얼’ 책엔
‘산책 때 지인 못 본 척하는 법’도



19세기 유럽 상류층의 사교 모임을 그린 그림사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

《양식화된 행동 ‘에티켓’의 유행


“아침에는 좀 더 단순하고 큰 반지가 좋고 팔찌는 착용하지 마라.” ‘루트리지 에티켓 매뉴얼(Routledge’s Manual of Etiquette·1860년)’의 한 구절이다. 고대로부터 예법서의 저변을 관통하는 주요한 철학은 매너가 도덕을 실천하는 한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18세기 영국은 자국의 매너에 자유로움의 이상을 강조하는 ‘폴라이트니스(politeness)’개념을 덧입혀 예의 바른 행동이 공공선을 증진한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면 에티켓이라는 용어가 폴라이트니스를 대체하게 된다.》








에티켓은 ‘붙이다’란 뜻을 가진 프랑스 동사 ‘estiquer’에서 파생된 말로 원래 성이나 궁정의 문에 붙어 있던 규칙을 뜻했는데 16∼18세기에는 궁정 혹은 외교적 세리머니를 의미했다.

매너가 스타일과 도덕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행동을 지칭하는 데 반해 에티켓은 분명한 규칙이 있는 형식적이고 양식화된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에티켓에서는 ‘도덕’이란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내면적인 도덕성은 무시하고 표피적인 양식에만 집중하는 에티켓은 매너가 포괄하던 범주를 확연히 줄여 버렸다.

산업구조 변화로 중간 계층이 부상하면서 전통 상류층은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만 아는 까다롭고 세세한 예법을 만들어야 했고, ‘루트리지 에티켓 매뉴얼’ 같은 복잡한 예법서가 유행했다. 사진 출처 구글북스 

과거의 예법이 ‘중용’을 내세우며 식탐을 경계하라고 주문했다면, 에티켓에 따르면 다음 코스가 나오는 것을 지연시키지 않기 위해 음식을 더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었다. 이처럼 새로 만들어진 세세한 행동 규칙은 단지 실용적이거나 상징성을 띠었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이유에 근거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에티켓의 기본 틀은 전통적인 예법이 강조했던 TPO 준칙, 즉 시간, 장소, 행사의 성격에 맞는 행동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다. ‘루트리지 에티켓 매뉴얼’에 나타난 여성의 옷차림을 예로 들어 보자.

“가볍고 비싸지 않은 재질은 아침에 입는 옷으로 적합하고, 마차를 타거나 산책할 때는 어두운 실크, 만찬과 무도회를 위해서는 화려하거나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깊이 파인 드레스가 적합하다. … 아침 화장용 옷차림으로는 단순한 재질에 옷깃과 커프가 무늬 없는 리넨으로 장식된 은은한 색깔이 아마도 가장 잘 어울리고 우아하다. … 낮에 끼는 장갑은 짧아야 하고 밤 행사용 장갑은 길어야 한다. 거꾸로, 낮에 입는 드레스는 소매가 길어야 하지만 이브닝 드레스의 소매는 짧아야 한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상에도 세세한 에티켓이 요구되었다. 산책 에티켓도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상류층에게 산책이 상당히 중요한 여가 활동이자 사교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산책 에티켓에는 우연히 만난 지인을 모르는 척하는 방법도 포함돼 있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그런 행위를 ‘컷(cut)’이라고 불렀는데, 컷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그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신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숙녀를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미혼녀는 어떤 경우에도 기혼녀를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설사 자신이 왕족일지라도 아랫사람은 자기가 모시는 사람을 모르는 척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가까운 친척끼리는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모르는 척하면 안 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적의를 가졌더라도 공적 관계에 놓이게 되면 그 감정을 잠시 유보해야 한다. 서로 아무리 적대적이라 하더라도 두 의사가 병상의 환자를 볼 때는 서로의 적의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까다로운 제한을 두었던 이유는 ‘컷’이 일종의 허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허세는 매우 천박한 행동으로 인식됐기에 가능한 한 그런 행동을 자제하는 일이 권장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척하는 편이 불쾌한 상황을 피하는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미소를 띠지 않은 채 딱딱하게 인사하는 것이 더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는 적절한 에티켓이었다.

이토록 세세한 에티켓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산업구조의 변화와 중간계층의 부상은 전통 엘리트층의 기득권에 위기를 불러왔다. 위기에 봉착한 상류층은 단순히 재력만으로는 손쉽게 획득할 수 없는 전통적인 유산을 통해 지위를 보존하고자 했다. 자신들의 지배력을 정당화할 만큼의 더 우월한 예의범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 전체를 통합적으로 아우르고 존중감을 얻으려 한 것이다.

당대 가속화된 상업화와 소비사회의 발전은 상품과 구매력처럼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이 사회적 지위의 표상이 되는 일을 강화했다. 그런 맥락에서 에티켓은 그야말로 ‘보여지는’ 행위로서 아주 효과적인 과시의 수단이었다. 그것이 정교할수록 더욱 고급스러운 상품 같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 없는 까다로운 에티켓은 좋은 집안에서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소수의 상류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무기로 작동했다. 즉, 이 복잡한 기획의 핵심은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다른 누군가는 매우 힘들게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