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산업1부장
첫째 딸이 지난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였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돌풍도 불었다. 딸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기자는 미국안전협회(NSC)의 데이터를 말해줬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100만분의 1이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의 65분의 1에 불과하다. 비행기 사고가 무서워 못 타겠다면 자동차는 더더욱 타면 안 된다.” 그 말에 딸의 두려움은 곧바로 사라졌다. 공포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할 때 생긴다.
8월 내내 전기차 화재가 국내를 뜨겁게 달궜다.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불이 난 게 발단이 됐다. 몇 초 동안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갑자기 폭발하듯 불타오르는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가만히 주차된 상태에서 일어난 화재였기에 충격이 더 컸다. 그 후 기자가 사는 서울 아파트는 지상에 전기차 주차구역을 따로 만들었다. 전국이 전기차 화재 대책으로 들썩거렸다.
전기차 공포증은 기술 발전 간과
그런데 공포심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차량 1만 대당 화재 건수는 내연기관차가 1.9건, 전기차는 1.3건이었다.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에서 더 자주 불이 났다. 다만 전기차는 비교적 최근에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새 차인데도 화재가 일어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2021∼2023년 동안 주차 중에 불이 난 전기차는 전체의 25.9%였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소방청에 동일한 통계는 없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불이 난 내연기관차는 전체의 18.5%라는 점을 참고하면 내연기관차도 외부 충격 없이 불이 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는 너무 과도할 뿐 아니라 기술 발전을 간과했다는 느낌이 든다. 배터리는 아직 미완성된 기술이고 계속 진보 중이다. 예를 들어 배터리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BMS는 배터리에 연결된 센서로 전압, 셀 온도 등 배터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측정해 배터리 이상 상황을 미리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는 화재 위험성을 크게 줄인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전해질로 물을 사용해 화재 걱정 없는 배터리 상용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몇 년 후면 전기차의 안전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배터리 기업, 초격차 기술 갖춰야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주로 브랜드를 보고 전기차를 구매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점차 중요하게 여길 것 같다. 어떤 배터리를 장착했는지를 확인하고 전기차를 사는, 소위 ‘파워드 바이(Powered by)’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런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초격차 기술력을 입증시켜야 한다. 미국이 괜히 비행기를 추락시키는 게 아니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