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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외국인 헬퍼 도입만으론 저출산 극복 역부족

입력 | 2024-09-03 03:00:00

[외국인 가사도우미 오늘 시행]
합계출산율 갈수록 하락 추세
가사-양육 부담 줄이는 걸론 한계
비싼 집값-과도한 교육비 대책 필요





“홍콩에서 되게 유명한 말이 있거든요. ‘아이를 키우려면 400만 홍콩달러(약 6억8680만 원)가 있어야 한다’고. 이런데 누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겠어요.”

1일 홍콩 셩완 셩완역 인근 거리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이안 리 씨(29)가 이렇게 말했다. 홍콩의 한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리 씨는 한 달에 대략 3만 홍콩달러(약 515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그는 “변호사나 특정 직업군을 제외한 대다수 20, 30대의 평균 월급이 이 정도인데, 말도 안 되는 월세에 높은 물가로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홍콩은 외국인 가사관리사(헬퍼)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 중 한 곳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2012년 1.28명으로 소폭 올랐지만 2019년 1.06명에서 2020년 0.88명, 2021년 0.77명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외국인 헬퍼 등을 운영해 단순히 ‘가사·양육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홍콩에서 만난 시민들은 홍콩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집값’을 꼽았다. 홍콩 센트럴 지역의 한 찻잎 판매점 사장(70)은 “400∼500제곱피트(약 11∼14평) 정도 하는 아파트의 월세가 1만5000∼2만 홍콩달러(약 257만∼343만 원)가량 한다”며 “젊은 세대들이 자녀를 낳기보다는 본인의 삶을 즐기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홍콩의 집값이 너무 비싼 것도 아이 낳기를 꺼리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교육열도 문제로 꼽힌다. 홍콩의 한 직장인(35)은 “아이를 교육하려면 수많은 교과외 활동과 과외를 시키거나 해외 유학이나 국제학교를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집값이 높아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자녀 교육열도 높다 보니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28)은 “홍콩에는 외국인 헬퍼 제도가 있지만 주거비 폭등, 잘못된 교육 시스템, 높은 생활비 등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고,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들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에릭 퐁 홍콩대 사회학과 교수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은 많은 외국인 헬퍼가 들어와 일하고 있지만 모두 출산율이 저조하다”며 “한국에서 외국인 헬퍼를 도입한다면 일부 효과는 볼 수 있겠지만 (집값, 교육 등) 좀 더 근원적인 부분을 바꿔야 출산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