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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DNA 확인’ 막혀… 생사 알 길 없는 성인 실종자 6800명

입력 | 2024-09-03 03:00:00

가족들, DNA 검사 요청해도
경찰 “관련 법규 없다” 거부
현행법으론 성인은 불가능





우리나라에서 실종된 뒤 현재까지 생사가 파악되지 않는 성인이 총 68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년 전 실종된 딸을 찾지 못한 채 숨진 송혜희 씨 부친의 사연이 최근 알려지면서 국내 실종 사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특히 성인은 실종돼도 유전자(DNA) 확인 절차의 법적, 제도적 미비점 때문에 행방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월 30일 기준 국내 실종자(성인 기준)는 총 6809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중에는 실종된 지 20년이 넘은 사람도 1995명 있었다. 실종 기간이 10년에서 20년 사이인 사람은 1633명이었다.

취재팀이 실종 신고부터 이후 수사 과정 등을 살펴본 결과 성인의 경우에는 가족과의 DNA 확인 및 비교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의 DNA를 수사기관에 등록해 놓고 변사자나 무연고자 등이 발견되면 대조, 확인해서 가족을 찾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실종자가 18세 미만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에 따라 DNA 확보 및 비교가 가능하다. 아동, 지체장애인, 치매 환자 등은 이 법에 따라 가족이 DNA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놓고 거의 실시간으로 비교, 확인할 수 있다.

폐쇄회로(CC)TV 확인 절차도 성인은 까다롭다. 성인 실종 사건의 경우 경찰이 CCTV 기록을 확인하려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하다. 반면 미성년자 실종 사건에서는 영장 없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초기 대응이 중요한 실종 사건에서 피해자가 성인이라는 이유로 수사가 지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4월 경기 파주시 한 호텔에서 여성 2명이 살해된 사건에서도 관련 실종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이 CCTV 영상을 확보하는 데만 13시간이 걸렸다.

이 같은 제도적 공백 탓에 변사자 중 신원이 확인돼 가족에게 인도된 경우는 최근 3년간 438건에 불과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DNA 정보가 등록됐다면 10분도 안 걸려 변사자나 무연고자의 가족을 찾을 수 있다”며 “관련 법이 없으니 수사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성인 실종자 빨리 찾을 ‘DNA 활용法’ 절실”
생사 알길 없는 실종 성인 6800명
범죄 의심돼도 단순 가출 치부 많아… 21년째 아들 찾는데 DNA 검사 퇴짜
경찰 “개인정보 유출 소송-징계 부담”… 美-獨선 DNA정보로 실종자 수사


“시신이라도 찾게 해달라.”

2003년 실종된 어머니를 20년 넘게 찾고 있는 문상진(가명·64) 씨는 동아일보 취재팀에게 “혹시 경찰이 발견한 변사자 중 어머니가 있는지 알고 싶어 DNA를 등록하려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경찰은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문 씨의 어머니는 당시 광주 자택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탄 뒤 연락이 끊겼다. 40대 초반이었던 문 씨는 이제 환갑을 넘겼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엄마 뼛가루를 만져보는 상상을 했다”며 “내가 저승에 가야 우리 엄마를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 관련 법 부재-처벌 부담에 경찰은 거부

문 씨가 자신의 DNA를 이용해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행법상 경찰이 이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종자가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일 경우 그 가족들의 DNA를 이용한 수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DNA 채취 및 보관이 법으로 허락된 성인은 실종 아동 가족과 범죄 피의자뿐이다.

21년째 행방불명인 아들을 찾고 있는 박홍림(가명·69) 씨는 20여 년 동안 전국 경찰서를 전전하며 DNA 채취 및 대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박 씨의 아들은 2003년 3월 경기 양주시 자택에서 나간 뒤 실종됐다. 당시 24세였다. 아들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지난해 부인까지 세상을 떠났다. 박 씨는 “아들이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20년 넘게 하늘에 빌었다”고 했다.

관련 법 부재 외에도 경찰은 소송이나 처벌, 징계 등의 부담 탓에 DNA를 이용한 수사를 꺼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DNA를 제출받은 뒤 관리에 문제가 생겨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면 민사소송을 당하거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 실종 업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은 “공무원은 법이 허용하는 권한 안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실종자 가족들이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식적으로는 ‘불가하다’고 통보해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생체 정보를 임의대로 처리했다가 인권 침해 논란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며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경찰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미국 독일은 DNA 정보로 실종자 찾아

해외에는 성인 실종자 관련 DNA 정보를 보관해 수사에 이용하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미국은 1993년 ‘DNA 데이터베이스 및 정보은행법’(일명 ‘DNA법’)을 마련해 실종자 가족이 요청하면 DNA 정보를 제출받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한 뒤 무연고자 등의 정보와 비교해 신속하게 소재를 파악한다. 독일과 영국도 관련 법이 있고 이에 근거한 ‘실종자 데이터 뱅크’를 운영 중이다. 신원미상의 시신이 발견되면 실종자 가족 DNA 데이터베이스와 자동으로 비교해 일치하면 유가족에게 즉시 통보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인 실종자와 가족의 DNA를 수사에 활용하기 위한 DNA법이 20,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여야의 무관심 속에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고 폐기됐다. 임시근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선진국 수사기관은 전부 DNA 정보를 적극 활용해 실종자 수색에 전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속히 관련 법안을 마련해 성인 실종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 실종자 수사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건조차 단순 가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인 실종자 전체를 경찰이 ‘가출인’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모든 사건을 자발적 가출로 간주하고 시작하는 것”이라면서 “실종 발생 초기 48시간을 놓칠 경우 수년 동안 찾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 연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가출자가 아니라 실종자로 보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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