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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5~8월11일 파리올림픽 기간 중에는 한국문화를 알리는 ‘코리아하우스(메종 드 라 시미)’도 운영됐다. 장소는 올림픽 양궁 경기장이 펼쳐졌던 앵발리드 경기장 인근 파리 7구에 있는 ‘메종 들라 시미(Maison de la Chimie)’. 주요 경기 응원전이 펼쳐졌고, 15개 기관이 주최하는 다양한 한국문화 홍보 행사가 펼쳐졌다.
김 감독은 각기 다른 3개의 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 3장으로 구성했다. 골드와 연한 파랑, 어두운 각기 다른 3개의 공간 색깔에 맞춰 먹색과 흰색 가구 위에 자개를 입히고 한국식 가구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뒤 각 방을 ‘원형-원형과 현재-원형의 미래’ 순으로 배열했다.
“예전에 궁궐에서 연회를 할 때는 항상 꽃이 있었어요. 그러나 겨울에는 꽃이 없기 때문에 채화를 만들었지요. 이번에 전시된 채화는 꿀벌의 벌집에서 채취한 밀랍으로 만들어 채색을 했어요. 그랬더니 작품을 설치하는 날 거짓말처럼 진짜 벌이 날아오더군요. 문을 다 열어놓으니까 벌들이 진짜 꽃인줄 알고 왔어요.”
“요즘 전시나 공연 작품을 보면 대부분 디지털 형태가 많습니다. 해외에서 전시하는 경우 원형 그대로 가져가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그러나 저는 한국에는 있고, 프랑스에는 없는 ‘원형’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골드빛 공간에 한복이 세 벌 밖에 전시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파스텔톤 한복은 묻혀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간에 어울리면서도 한복이 도드라질 수 있는 원색의 컬러로 한복으로 제작했지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술공예학과 이정용 교수팀이 청화백자 문양과 형태를 살린 화장품 용기를 디자인했고, 화장품 제조회사 코스맥스가 동백나무씨기름, 당호박씨기름 등을 활용한 ‘화협옹주 도자에디션’ 전통화장품을 복원해낸 것.
“올림픽 기간 중 18일 동안 전시를 하면서 매일 4000명 가까운 인원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하더군요. K팝, K드라마로 한국문화에 친숙해진 외국 관람객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세련미에 놀라워하면서도 너무 좋아하더군요.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세번째 김해자 선생님 ‘누비옷’ 미디어아트 전시실은 프랑스 친구가 안내를 담당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더군요. 자기가 설명하는데 다들 너무 진지하고, 잘 받아들여주는 데 감동적이라 하나도 안 피곤하다고 말했습니다. 관람객들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음악에 이끌려 이 공간에 들어왔다가 너무 충격적인 작업을 관람하게 됐다’는 반응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대 국악과(작곡 전공)를 졸업한 김 감독은 세종문화회관 삼청각에서 국악공연 전문위원을 맡는 등 국악 작곡과 공연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그런가 하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 한복진흥센터장, 해외문화홍보원 문화예술국제교류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아 한복과 한식, 음악과 전시 등 해외에 한국의 세련된 미(美)를 알리는 해외홍보프로젝트 전문가이기도 하다. 또한 숭실대에서 미디어아트로 박사학위를 수료한 뒤 국악과 컴퓨터, 미디어아트 분야를 대학에서 가르치고 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김민경 예술감독
“대학에서 국악을 교양수업을 가르치는 데 학생들이 모두 잠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너무 외면하고, 지루해하길래 좀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전통이랑 미디어아트를 붙여서 소개하는 작업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립민속박물관하고 김홍도, 신윤복 그림 속 인물들이 실제로 춤을 추고, 국악을 연주하는 미디어아트를 처음 시도했어요. 독일 박람회에서도 우리 소리와 음악, 그림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소개해주는 작업을 하니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제가 전시 미디어아트를 7년 정도 했는데, 단 원칙이 있었어요. 거의 대부분 박물관과 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에는 원형이 있으니까. 원형이 최소한 70~80%가 있는 상태에서 미디어아트가 들어가야 전시가 조화롭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사람들이 지루해하니까 좀더 잘 소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디어아트를 선택한거죠. 그런데 요즘은 미디어아트가 너무 ‘투 머치(Too much)’한 경우가 많아요. 돈 주고 산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뿌린다고 해서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몇 십년 동안 묵힌 장맛과 편의점에서 파는 된장 맛하고 똑같지는 않잖아요. 수십년 동안 장인으로서 노력해온 사람에게서 밀당과 향기가 나오는 거지, 돈주고 쉽게 사는 작업에서는 화려하지만 향기를 느낄 수 없어요. 미디어아트도 화려한 기술보다는 원형과의 조화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올해 초에 덕수궁에서 화협옹주 화장품 전시를 보고 참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K뷰티만 있는 게 아니라 K공예도 같이 들어가고,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으니까요. 270년 만에 무덤에서 나온 전통 화장품을 복원하고, 용기를 디자인하고, 도자기로 만들고 하는 작업은 모두 오리지널이 있는 거잖아요. 원형을 갖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장신구는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데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대륙별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른데, 사극 드라마를 본 미국, 인도 등의 시청자들이 한국의 전통 장신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어요.”
김 감독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문화홍보원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해외문화홍보 프로젝트 예술감독을 꾸준히 맡아왔다. 유럽은 물론 중동, 남미 등 전세계를 돌며 수교기념 행사와 순방행사, 한국문화원 개원 축하행사 등을 통해 한복, 한식, 국악, 문학, 태권도 등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펼쳐왔다.
“제가 한류 문화 확산에 대한 전문가로 일을 해오다 보니까, 한복도 이렇게 알리고 키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제가 한복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국악 공연계에 오래 있으면서 한복은 늘 친숙했습니다. 특히 해외공연을 가면 전통 한복의 퀄리티를 늘 생각했죠.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현대미술관 개관식에는 소수의 VIP만 초청돼 국악공연을 하는데, 연주자들에게 정말 작품같은 전통한복을 입히곤 했습니다. 국악계도 그동안 사람들이 소외받은 분야인데, 한복을 만드는 장인들은 더욱 더 그런 상황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릴 때 한 분야만 따로 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흔히 동양의 미를 여백의 미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정말 장인의 손길로 정성껏 다듬은 세밀한 작품이 많습니다. 세밀함은 왕처럼 귀한 것이지요. 평생 갈고 닦은 장인의 솜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한국문화의 정수를 담은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