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회 먹을 때 물고기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마주 앉은 사람이 바뀌어도 질문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제철 생선, 횟감 고르는 방법, 가장 비싼 횟감 혹은 물고기 이름의 기원이나 어류 명칭에 붙는 ‘치’와 ‘어’의 차이 등이 질문 빈도가 높다. 자주 답변하다 보니 머릿속에는 모범 답안이 있을 정도다.
며칠 전 아내가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동료들과 횟집에 있는데 의견이 양쪽으로 나뉘었단다. 포털에서 캡처한 걸 보내며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내용인즉슨 물고기 이름에 붙은 ‘치’와 ‘어’에 관한 설명이었다. 자주 받는 질문이라 쉽게 답할 수 있었으나, 출처를 보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수산 분야 공공기관 홈페이지가 출처였다.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생선의 이름에 따라 ‘치’가 붙는 생선과 ‘어’가 붙는 생선으로 나뉘게 됩니다. 예외적인 몇 종류를 제외하고는 ‘치’가 붙는 생선들은 비늘이 없고, ‘어’가 붙는 생선은 비늘이 있는 물고기입니다.” 잘못 알려진 내용을 올바르게 고쳐주지 못할망정 공신력을 가진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으니, 사람들이 더 믿을 수밖에.
‘치’와 ‘어’에 관해 물으면 내 답변은 늘 똑같다. “넙치는 비늘이 없고, 광어는 비늘이 있습니다.” 곧바로 말뜻을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같은 물고기인데 넙치는 순우리말이고, 광어는 한자어다. ‘치’가 붙으면 비늘이 없고, ‘어’가 붙으면 비늘 있는 어류라는 말이 틀렸음을 비꼬는 답변이다. 준치, 날치, 쥐치, 꼼치, 보구치, 홍살치, 등가시치 등은 ‘치’로 끝나지만 비늘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비늘이 있더라도 외관상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고등어, 장어, 병어, 상어 등은 ‘어’가 붙는다. 종결어 ‘치’와 ‘어’는 비늘의 있고 없음과 관련이 없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한국어도보’(1977년)에 나오는 물고기 이름의 종결어를 살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치’가 붙는 물고기가 18.23%로 가장 많았고, ‘어’로 끝난 물고기가 16.4%로 뒤를 이었다. ‘치’와 ‘어’의 비율을 합쳐도 약 34%밖에 되지 않는다. 이 외의 물고기 이름에 붙는 종결어로는 ‘리’(도다리, 벤자리 등 9.98%), ‘기’(참조기, 놀래기 등 7.8%), ‘돔’(참돔, 감성돔 등 7.57%), ‘이’(전갱이, 밴댕이 등 6.88%), ‘대’(서대, 성대 등 4.59%), ‘미’(참가자미, 쥐노래미 등 3.78%) 등 다양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치’가 예전에는 어류를 지칭하는 보편적인 종결형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치’는 물고기라는 뜻의 우리말 접미사였는데 식자층이 선호하는 어류에 한자 ‘어’가 붙은 것으로 봤다.
‘치’가 붙은 물고기는 상류층이 관심을 두지 않은 물고기였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꼭 그런 건 아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옛사람들은 준치 맛을 높이 평가했다. 준치는 시어(鰣魚)라는 이름과 경쟁해 이겼고, 날치는 비어(飛魚)를, 멸치는 추어(鯫魚), 갈치는 도어(刀魚)를 이겨서 ‘치’를 유지하고 있다. ‘치’와 ‘어’는 고유어냐 한자어냐의 차이일 뿐이다. 넙치든 광어든 비늘 유무와 상관없듯이.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