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1.8억 내던 아파트 법 바뀌면 0 여야, 서민 지원엔 티격태격하면서 고가 아파트 억대稅 감면엔 찰떡 합의 서울 상위 30% 향한 노골적 표심 구애
송평인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앞다퉈 상속세법 개정안을 냈다. 민주당 안은 현행 최고세율 50%는 유지하되 상속세 일괄공제액을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한도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안은 최고세율을 40%로 낮추고 자녀 1인당 일괄공제액을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0배 올린다는 내용이다.
상속세 면세점은 민주당 안에서는 18억 원, 정부 안에서는 17억 원이다. 상속세 면세점에 해당하는 가격의 아파트 한 채가 사실상 재산의 전부인 남성을 상정하고 부인과 자녀 2명이 있는 그가 사망했을 때 얼마의 상속세를 감면받는지 계산해 보자.
현행 세법에 따르면 자녀 수가 몇 명이건 5억 원은 일괄 공제되고 부인에 대해 또 최소 5억 원이 공제된다. 공제액을 최소한으로 적용하면 과세 대상은 18억 원 아파트의 경우 8억 원, 17억 원 아파트의 경우 7억 원으로 각각 1억8000만 원과 1억5000만 원의 상속세가 나온다. 그러나 상속세법이 민주당 안대로 바뀌면 두 경우 다 상속세를 내지 않고, 정부 안대로 바뀌면 18억 원 아파트 상속인만 1000만 원의 세금을 낸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2017년에서 임기를 마친 2022년 사이에 서울 중위권 아파트 가격이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2배 올랐다. 고가 아파트는 2배 이상 올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집값이 약간 내렸다가 다시 문 정부의 최고점에 접근했다. 현재 18억 원 아파트와 17억 원 아파트는 2017년에는 9억 원과 8억5000만 원 미만이었을 것이다. 2017년과만 비교해도 자산 가치가 2배 이상으로 뛰었으나 상속세 한 푼 내지 않고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
현재 서울 중위권 아파트 가격인 10억 원까지는 현행 세법에 따르더라도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자 양도세 비과세 대상인 12억 원 아파트도 상속세는 많아야 2000만 원이다. 언제부터 17억, 18억 원 아파트까지 나라가 상속세 부담을 걱정해줄 아파트가 됐나. 서민 지원을 놓고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앉아서 9억 원과 8억5000만 원을 번 아파트 소유자에게 통 크게 억대의 세금을 깎아주는 데는 이해가 찰떡같이 합치하는 여야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 남편과 함께 살던 집을 부인이 상속받을 때 억대의 세금을 내야 해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면 억울하다. 그러나 이미 현행 세법으로도 배우자는 30억 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자녀들에게까지 억대의 세금을 깎아주며 불로소득의 대물림을 보장해줄 이유가 있는가.
기업이 가업(家業)을 잇도록 상속세를 깎아주는 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구의 상속세를 깎아주는 것은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나. 살아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9억 원과 8억5000만 원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인가. 상속세는 이중과세라고? 앉아서 번 9억 원과 8억5000만 원에 대해 생전에 무슨 세금을 냈나.
2017년 이후의 집값 상승은 서울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서울 거주자와 지방 거주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전례 없는 양극화를 낳았다. 너무 급격한 집값 상승으로 무주택자에서 유주택자, 작은 평수에서 큰 평수로 옮겨갈 사다리가 끊겼다. 그런데도 오히려 집값 상승을 상속세 완화의 이유로 들고 있으니 전도(顚倒)도 이런 전도가 없다. 27년 만에 상속세를 손질한다면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등의 근본적인 것이 돼야 한다. 최고세율과 공제액이나 건드리면서 서울 상위 30%를 향한 노골적인 표심 구애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