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 응급의료] ‘최후 보루’ 권역응급센터도 한계 “필수과 의사 부족 응급수술 못해”… 다른 병원서 전원은 아예 거절 ‘진료 중단 - 축소’ 병원 계속 늘어… 정부 “99%가 24시간 가동” 반복
“응급실 축소 운영” 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안으로 구급대원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출입문 옆에는 5일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금요일 오전 7시까지는 심정지 환자만 수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한시적 축소 운영 안내’ 공지가 붙어 있다. 경기 남부권 최대 병원인 아주대병원의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진료하는 중증환자 수도 전국 최다 수준이다. 수원=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일 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센터)에서 이날 야간 당직인 고벽성 응급의학과 교수(왼쪽)이 이송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응급환자 수용이 혹시 가능한가요?”
2일 오후 9시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센터).
이날 야간 당직인 응급의학과 고벽성 교수의 휴대전화는 5, 10분마다 울렸다.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묻는 다른 병원 관계자와 119 구급대원의 전화였다. 고 교수는 다른 병원 관계자 전화에는 미안한 말투로 “병원 간 전원은 어렵다”며 예외없이 거절했다. 119 구급대원 전화에도 상태가 중증인 절반 정도만 “환자를 보내라”고 했다.
2일 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센터)에서 고벽성 응급의학과 교수(오른쪽)가 내원 환자 상태를 살피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 같은 진료 제한은 올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8명이 병원을 떠나며 시작됐다. 연수까지 겹치며 20명이던 의사가 11명으로 반토막 났고 결국 5, 6명이 서던 당직을 2명이 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7월부터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투입하긴 했지만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병상도 33개에서 20개로 줄였다.
환자를 받기 어려운 이유 중에는 응급 처치 후 진료를 담당할 배후 필수과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것도 있다. 고 교수는 “예전에는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당직 의사가 마취과의 도움을 받아 응급수술을 했다. 지금은 어디나 의사가 없어 수술이 어렵다 보니 무턱대고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의 경우 최근 호흡기내과, 췌장담도암센터 교수 등 필수과 의사들이 잇따라 사직한 탓에 기존 입원 및 외래 환자 진료 외에는 응급환자를 수용할 여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 됐다.
역시 권역센터인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의 경우 3일 응급실 문 앞에 ‘한시적 축소 운영’ 안내문을 붙였다. ‘5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7시∼금요일 오전 7시에는 심정지 환자만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 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센터)에서 의료진이 환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권역센터는 기존 33개 병상을 20개로 축소 운영 중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응급실 문은 열었지만 진료 제한… 중증 환자들 골든타임 놓칠 우려
의사들 “응급환자 대형병원 몰려와…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 모르겠다”
2일 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데려온 구급대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야간 당직 의사에게 태블릿PC를 보이며 환자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권역센터로 몰려드는 응급환자들
일반 병원들이 문을 닫은 2일 오후 8시경 한양대병원 권역센터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진 20대 여성이 구급차에 실려 왔다. 환자를 이송한 구급대원은 응급의학과 고벽성 교수에게 “발견 당시 혈중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 수치가 42%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 수치는 5% 이하가 일반적이며 50% 이상이면 혼수 및 치사 상태가 된다. 고 교수는 여성이 노출된 가스 종류 등을 확인한 뒤 “고압산소 치료를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일 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센터)에서 고벽성 응급의학과 교수(오른쪽)가 내원 환자 상태를 살피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응급실을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이 늘면서 ‘최후의 보루’인 권역센터 문을 두드리는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날 오후 11시경에는 용산소방서 구급대가 “계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20대 환자를 받아 주는 병원이 없다”며 이송을 요청했다. 고 교수가 “받겠다”고 하자마자 이번에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70대 환자가 광진소방서 구급차에 실려 왔다. 구급대 중에는 “전화로는 안 받아 준다”며 일단 밀고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 교수는 “2차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가 가능한 환자들이 ‘받아 주는 곳이 없다’며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밀려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증환자 처치가 어려워진다”며 발을 굴렀다.
● 진료 제한 늘어나는 권역센터
의료계에선 한양대병원 같은 권역센터에서 진료 제한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양대병원의 경우 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중증외상환자 수용 불가, 정신과·안과·정형외과 진료 필요 환자 수용 불가 등 9개의 제한 메시지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올려 놓은 상태다. 전국에 44곳뿐인 권역센터는 해당 권역 내 최종 치료기관인 만큼 여기서 수용이 거절된 중증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역시 권역센터로 서울 서남권을 책임진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은 이달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반까지 신규 환자를 안 받기로 했다. 권역센터인 아주대병원 응급실도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는 “심정지 환자만 받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군의관,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투입해 공백을 메우고 고비를 넘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권역센터에 투입된 한 PA 간호사는 “동맥혈 채혈, 비위관(콧줄) 삽입 등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맡고 있지만 갈수록 먼 지역에서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의료진 모두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