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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곧 기회, 편견 깨는 게 우선”… 홀로 선 윈저, 가보지 않은 길 간다

입력 | 2024-09-05 09:00:00

남경희 윈저글로벌 대표 인터뷰
독립한 윈저 “제품력 자신 있어…해외 파트너도 모색”
MZ세대 중점 마케팅 전개… “지속적인 인식 개선 차원”
“블렌디드 위스키는 클래식… 기회 돌아올 것”



2010년 공개된 윈저 17년산 광고.


세기말 감성이라는 일명 ‘Y2K’가 패션계를 최근 몇 년째 지배하고 있다. 과거의 콘텐츠를 요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 시절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탈리아 기반 브랜드 디젤이다. 2000년대 프리미엄 청바지의 대명사로 불렸던 디젤은 어느새 트렌드에 뒤처진 브랜드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22년 글렌 마틴스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그는 비정형적이고 유니크한 아방가르드 실루엣에 디젤의 강점인 데님, 다양한 헤리티지와 아카이브를 더하면서 디젤을 Y2K 트렌드를 주도하는 브랜드로 이끌었다.

디젤과 비슷하게 새로운 길을 걷고자하는 브랜드가 있다. 국산 위스키 3대장 중 하나로 꼽히는 ‘윈저(WINDSOR)’다. 윈저는 본래 종합 주류기업 디아지오코리아에 속한 브랜드로, 2000년 초반 유흥시장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가짜 양주’ 논란부터 시작해 불경기 등으로 위스키 인기가 차갑게 식었다.

게다가 최근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스키 시장의 소비 중심축은 유흥에서 가정 채널로 옮겨왔다. ‘유흥 강자’였던 윈저에게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이진 않았다. 결국 디아지오는 유흥 채널 중심의 브랜드를 줄이고 대중적인 브랜드의 제품을 확대하는 체질 개선 차원에서 윈저를 매각했다.
‘유흥 강자’의 새 출발… 핵심은 결국 제품력

남경희 윈저글로벌 대표가 29일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우열 기자 cloudancer@donga.com


디아지오의 품을 떠난 윈저는 윈저만 ‘유흥’이란 키워드 속에 갇힌 선입견을 깨고 가보지 않았던 길로 향하겠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만난 남경희 윈저글로벌 대표는 “디아지오에선 각각 포트폴리오마다 역할이 있었다. 그때 윈저와 지금 윈저글로벌의 역할은 상당히 다르다. 지금은 가보지 않았던 부분을 시도하려고 한다”며 “가정용 시장이나 MZ세대를 공략하는 것은 기본이다. 제일 큰 숙제는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윈저는 부활을 위해 말 그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한다. 독립법인이 된 만큼 자유도 높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대표적으로는 위스키 이상의 포트폴리오 확대나 해외 진출 계획 등이다. 남 대표는 “원래부터 윈저를 원하는 해외 파트너들이 많았다. 이제 풀 IP(지식재산권)를 글로벌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파트너들을 모색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윈저의 자신감은 제품력에 기반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지만 윈저 브랜드가 생산하는 위스키는 제조부터 병입까지 모든 과정이 스코틀랜드에서 이뤄져 국내에 완제품 형태로 수입되는 제품이다. 실제 제품에도 스코틀랜드산으로 원산지가 표기되고 있다.

남 대표는 “윈저가 인터내셔널에서도 품질 요소로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품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새 출발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제품력에 자신이 있다. 이러한 점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편견을 깨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윈저를 폭탄주처럼 안 좋은 순간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니트나 온더락으로 경험하면 깜짝깜짝 놀라시곤 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윈저가 성수, 이태원, 홍대, 을지로 등에서 9월 한 달간 진행하는 윈저 하이볼 위크 포스터(왼쪽)과 윈저글로벌 모델 배우 류준열의 화보(오른쪽).


이에 따라 새롭게 출발하는 윈저의 마케팅 전략도 MZ세대에게 브랜드와 제품력을 알리는데 집중한다. 우선적으로 위스키 입문 단계에 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윈저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윈저는 대학교 개강 시즌을 맞아 최근 ‘백투스쿨(Back To School)’ 테마의 파티 행사를 열었다. 위스키 원액보다는 다가가기 쉬운 칵테일을 제공하고 DJ를 섭외해 파티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 대표는 “대학생들이 소비력이 크진 않지만, 이들부터 먼저 인식을 개선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 이외에도 여의도가 본사인 만큼 직장인들을 초대해 위스키 클래스를 진행하고, 윈저와 아트가 함께하는 아트 클래스도 진행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급변하는 주류 트렌드… 돌고 돌아 ‘집밥’

29일 서울 영등포구 윈저글로벌 본사에 윈저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윈저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최근 주류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다는 점. 윈저는 몰트(Malt) 위스키에 그레인(Grain)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다. 2000년대 국내 시장을 주름 잡았던 위스키들도 대부분 블렌디드다.

최근 불기 시작한 위스키 열풍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 이유는 위스키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본래 위스키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몰트로만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몰트에 세금을 붙이는 법안이 제정되면서 세금을 피하기 위한 몰트 외 위스키, 즉 그레인 위스키가 탄생했다. 블렌디드는 값비싸진 싱글몰트 위스키와 저렴한 그레인 위스키를 적절하게 배합해 맛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잡았다. 팬데믹 전후로는 가성비보다 가치에 집중하는 소비문화가 떠오르면서 싱글몰트 위스키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와인, 전통주, 데킬라까지 주류 트렌드가 급변하는 점도 윈저에겐 불안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 대표는 돌고 돌아 블렌디드 위스키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순간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집밥’에 비유하며 “블렌디드 위스키도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온 클래식이다. 클래식은 클래식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블렌디드 위스키의 위상이 떨어진 것 맞으나 여전히 가장 많은 포션을 차지하는 주종이다. 다시 우리한테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예전엔 위스키를 마시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하이볼이나 여러 형태로 여기저기서 판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셈”이라고 했다.

끝으로 남 대표는 “윈저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었는데 여러분이 저희를 잠깐 잊은 것 같다” 며 “그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말하고 싶다. 저희는 항상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