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유통기업서 비밀 인수 제안받아 세븐일레븐, 점포수-매출 앞서지만 엔저 영향에 위상보다 시총 낮아 “다른 우량기업도 위험” 우려 커져
세븐일레븐 저팬 홈페이지 제공
일본을 대표하는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이 캐나다로 넘어가게 될까. 캐나다 유통기업 알리멘타시옹 쿠시타르(쿠시타르)가 지난달 세븐일레븐 모기업 세븐앤드아이홀딩스에 인수를 제안했다. 시장은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일본 기업이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했던 데다, 엔저로 주식이 바겐세일 중이기 때문이다.
● 캐나다 경쟁사의 인수 제안
‘회사는 쿠시타르로부터 모든 발행 주식을 인수하겠다는 구속력 없는 비밀 예비 제안을 받았음을 확인한다.’
지난달 19일 세븐일레븐 모회사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쿠시타르는 캐나다 유통 대기업. 편의점 브랜드 ‘서클K’ 운영사이다.
세븐일레븐은 일본에서 ‘생활 필수품’으로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브랜드이다. 싸고 질 좋은 식품을 판매할 뿐 아니라 금융·행정 업무와 각종 고지서 수납까지 해결하는 만능 점포이기 때문이다. 지진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세븐일레븐은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생명줄’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런데도 쿠시타르가 이를 사겠다고 나설 수 있는 건 세븐일레븐의 업계 위상에 비해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주가가 너무 싸기 때문이다. 인수 제안이 알려진 뒤 주가가 25% 넘게 급등했는데도 시가총액은 5조7000억 엔(약 52조 원)에 그친다. 쿠시타르 시총(711억 캐나다달러·약 70조 원)에 한참 못 미친다.
주가가 낮은 데는 이유가 있다. 편의점 사업은 알짜이지만, 다른 자회사가 수익성을 갉아먹는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2022년 말 백화점(세이부)을 팔고, 대형마트(이토요카도) 사업을 축소해 왔지만 주가를 띄우진 못했다. 레스토랑, 은행, 통신판매, 보험대리점 등 너무 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것도 주가엔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 현실화한 엔저 리스크
● 제2 세븐일레븐은 어디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아직 인수 제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쿠시타르가 얼마의 가격을 제시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만약 거래가 성사된다면 해외로 팔린 일본 기업 중 최대 규모가 될 건 확실하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18년 2조 엔에 한미일 연합에 팔린 도시바 메모리(현 키옥시아)였다.
과거 일본 기업은 인수 제안이 와도 이를 묵살하곤 했다. 주주가치보다는 경영진 이익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 자본에 멀쩡한 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역시 19년 전인 2005년에도 쿠시타르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 이토 마사토시 회장이 이를 바로 거절한 적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 정부가 인수합병(M&A) 지침을 바꾸며 시장의 규칙이 달라졌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도록 의무화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도 이 지침에 따라 독립적인 사외이사에게 판단을 맡겼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번 건은 일본 M&A 시장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쿠시타르 선례를 본떠 일본 기업 인수에 뛰어들 해외 투자자가 늘 수 있어서다. 이미 투자업계에선 ‘제2의 세븐일레븐’이 될 만한 일본 기업이 어디인지 찾기 바쁘다. 주가가 저렴하면서도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가 탄탄한 소비재 기업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라면으로 유명한 닛신식품홀딩스,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 제과회사 칼비, 운동화 브랜드 아식스, 맥주회사 삿포로 등이 꼽힌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