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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주방, 지역 농산물 급식 ‘팜 투 테이블’… 음식공동체 꿈꾼다[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입력 | 2024-09-04 23:00:00

英 하워드 1898년 전원도시 제창
집안일 공유 협동주택 실현
지역 농장 식재료로 조리하는 ‘팜 투 테이블’ 운동 활성화
이상적 커뮤니티 향한 노력 계속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음식을 축으로 한 공동주택


‘가족’의 유의어로 쓰이는 ‘식구’는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의 의미를 대변한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을 공급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집의 부엌이나 동네 식당, 지역 축제 등에서 음식은 정보와 노동을 교환하고 서로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요즘 유명 식당과 카페는 지역이나 백화점을 찾아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기업의 구내식당은 기업 복지와 회사 분위기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인구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골에서 남아 있는 식당의 가치와 역할을 살펴보면 음식과 지역의 연관성을 더욱 크게 실감할 수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음식과 공동체는 이제 지구적 변화와 함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음식과 도시, 건축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생겼다.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의 근대 신도시계획을 비롯해서 한국 수도권 신도시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준 대표적 도시계획 중 하나가 1898년 영국의 에버니저 하워드가 제창한 ‘전원도시’이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와 전원생활의 이점을 결합한 도시를 제안했다. 전원도시는 인구와 밀도, 면적을 제한하고 도시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도시의 가장자리에 영구적인 농업지대인 그린벨트를 설정해서 과수원과 낙농업, 도시 공동체 밭을 조성하고 이후 일정 인구 이상이 되면 다른 전원도시를 세워서 인구를 분산하도록 계획했다. 전원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주거와 산업, 농업을 결합하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자족도시’를 추구하면서 도심 내 녹지와 농업을 통해 자연의 접근성을 높인 것이다.

1898년 에버니저 하워드가 낸 책 ‘내일: 진정한 개혁에 이르는 평화로운 길’ 중 도시와 전원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고 전원도시의 가치를 표현한 다이어그램. “사람들이 어디에 살 것인가?”를 묻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하워드가 추구한 전원도시는 궁극적으로 도시의 공동체 생활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려는 데 있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과도한 도시 집중과 공동체 붕괴, 도심 내 자연녹지 부족 등은 도시의 다양성 부족, 고도의 도시발전 저해 등 전원도시에 대한 다른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도시계획을 다시금 살펴보게 만든다. 하워드는 도시계획 중 공동주택에 큰 관심이 있었는데 전원도시가 최초로 실현된 런던 북부에 있는 레치워스(1904년)의 협동주택은 집안일을 입주자가 공유하게 하고 각 집은 부엌이 없는 32개 유닛으로 만들었다. 개별 부엌을 대신한 공동주방과 식당은 실제 공동주택의 커뮤니티를 증진시키고 여성의 가사 노동을 줄일 수 있었다. 하워드의 전원도시는 지금 많은 신도시의 바탕이자 고전이다. 그가 생각한 전원도시의 실체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공동체의 실현이었다.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식재료를 가지고 공동주방과 식당에서 만든 음식이 공동체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은 도시와 음식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하게 한다.

근대 초기 공동주택은 사회적 실험과 이상향을 위한 실천이라는 의미가 컸다. 특히 공동주택 중 음식과 관련된 공간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것은 당시 여성의 가사 노동에 관한 이슈가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실험의 시작은 조리 공간과 식사 공간이었지만 이후 육아, 세탁 등 다양한 가사 노동 영역에서 커뮤니티의 실험이 확대되었고, 이후 가사 노동을 넘어 극장, 수영장, 카페 같은 여가시설로 공동체 영역이 확대되었다. 이것은 아파트 호텔, 부엌이 없는 집, 조리된 음식 배달 등 요즘 공유주택들이 고민하는 부분의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당시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 당시는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동’을 공동체 스스로 함께했다는 점이다.

지역 농산물을 식탁에 올리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운동은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화, 도시와 농촌의 결속 등 여러 도시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진 출처 요나 작가 제공 

근래 자주 보이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은 가까운 지역의 믿을 수 있는 생산자나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가지고 가정과 식당, 학교에서 현지 음식을 제공하는 사회운동이다. 이 운동을 시작한 요리사이자 사회 운동가 앨리스 워터스는 1971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근에 레스토랑 ‘셰파니스’를 열었다. 이 식당은 지역 인근에서 생산되는 신선하고 지속가능한 식재료를 단순히 조리하는 방식으로 농부, 어부, 요리사, 먹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한 지역 음식 공동체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후 그녀는 학교에 텃밭을 만들어 농산물을 기르고, 직접 식재료로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운동으로 확산하여 미국 백악관에까지 텃밭을 조성했다.

팜 투 테이블 운동은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화, 지역경제의 연결, 윤리적 소비, 도시와 농촌의 결속 등 수많은 도시 문제를 풀 실마리가 된다. 도시 농업과 팜 투 테이블의 연결은 각박한 도시의 오아시스가 되고, 농어촌과 연계된 시골의 팜 투 테이블은 지역의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문화발전소의 역할을 한다. 길거리에 붕어빵이라도 먹을 수 있는 노점상이 있는 지역은 조금이라도 인간미가 느껴진다. 실제 세계 많은 곳에서 노점상은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유럽의 광장과 연계된 카페와 식당은 도시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활기차게 만든다. 음식은 단순히 맛과 영양을 넘어서 인간의 생존과 즐거움의 근간인 동시에 도시와 인류공동체를 이어주는 연결점이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