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엘리트 대학 출신 첫 대통령 “논리 잘못 쓰면 무식한 자보다 해롭다” ‘서울법대시대’ 쓴 교수는 법대생에 가르쳤다 의료대란 불안한 국민… ‘큰 정치’ 하고 있나
2024.09.04.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불법 부당을 알리려다 순국한 이준 열사는 검사였다. 서울대 법대 전신인 법관양성소 1회 졸업생으로 법대 교정 그의 동상엔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글이 새겨져 있다.
최종고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2013년 출간한 ‘서울법대시대’에서 이준 열사부터 소개하며 ‘사실 “천하제일 서울법대”라고 자부하면서도 대통령은 내지 못하였다’고 적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총재 이회창 동문, 총리를 지낸 이수성 동문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아무튼 끝내 대통령을 내지 못한 최고 엘리트 대학 서울법대시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법대의 무능인가, 한국 국민의 수준인가, 아니면 엘리트 대통령은 원래 거부되는 것인가?’ 책 속에서 자문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 윤석열 대통령 집권 2년 4개월이 다 된 지금, ‘최고 엘리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최종고는 말을 아끼는 듯했다. 걱정스럽지만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든든한 주치의가 있어 걱정 없겠지만 노부모와 따로 살거나 아이들 키우는 집에선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대통령 국정 수행도 성적순이 아님을 입증했다는 게 윤 대통령 업적으로 남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의 ‘밴댕이 정치’ 때문이다.
혹시 대통령 모욕으로 걸릴까 겁나 굳이 원저자를 밝히자면,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6년 의대 증원 재검토안’을 내놓자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도,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도 돌연 취소했다. “대통령이 유치원생인가. 이런 밴댕이 정치가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는 박 의원의 지적은 찌릿하고 신랄하다.
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도 밴댕이 같다.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곤욕을 치르고 오라고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느냐”고 정진석 비서실장은 4일 말했다. 자신이 간신이라는 자백처럼 들린다. 차라리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곤욕을 치렀다면, 참고 심지어 손을 내미는 ‘큰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국민은 다 알아본다. 그게 싫어 피함으로써 윤 대통령은 ‘87년 체제 첫 대통령 불참’이라는 밴댕이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날이 하필 대통령 부인 생일이어서 미 상원의원단과 부부 동반 만찬을 가진 것도 개운치 않다.
유교적 전통, 동양적 가치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는 덕(德)이 중요하다.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무엇보다 강력한 동인은 너그러움과 미더움, 공평무사 같은 지도자의 덕이라고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강조했다. 의료개혁이 아무리 중요해도 윤 대통령이 국민 마음부터 얻지 못하면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대안 없이 밀어붙이다가는 2027년 3월 대통령 선거는 뻔하다. 그럼 윤 대통령이 국민 목숨 걸고 시작한 의료개혁은 2026년에서 멈추고 만다. 그래도 상관없단 말인가.
한때 ‘육법당(陸法黨)’ 소리를 들었던 서울대 법대였다. 군사독재를 뒷받침했다는 의미다. 지금은 자칫 ‘검법당(檢法黨)’ 소리가 나올까 두렵다. ‘서울법대시대’에서 최종고는 ‘법대생에게 논리, 윤리, 심리를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썼다. ‘논리가 강한 주지주의적 인간일수록 윤리에는 약하다. 그리고 논리를 바른 방향으로 구사해야지 꼬이거나 나쁜 방향으로 쓰면 무식한 자보다 더 해롭다’고도 했다. 조국을 위한 생명의 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서울대 법대 출신 대통령이 무식한 자보다 해롭다는 소리는 안 듣게 해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