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연일 대출제한 조치 발표 원하는 만큼 못받을까 비상 걸려 더 유리한 조건 찾는 ‘대출 유목민’도 당국, 불만 확산에 대출 일부 숨통
지난달 24일 집을 매수하기로 한 박모 씨는 계약한 지 5일 만에 바로 은행을 찾아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마쳤다. 잔금일(11월 25일)이 석 달이나 남았지만 연일 은행권에서 대출제한 조치들을 쏟아내자 서둘러 ‘대출 예약’을 해둔 것이다. 박 씨는 “원래 4분기(10∼12월)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돼 느지막이 대출을 알아보려 했는데 원하는 만큼 대출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미리 심사를 받았다”면서 “11월 초에 금리, 한도 등을 살펴보고 대출처를 바꿀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1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중단,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제한, 거치 기간 폐지 등 은행권의 갑작스러운 대출 조이기에 실수요자들이 대출금 마련을 위한 ‘각자도생’에 분주하다. 잔금 치르기 석 달 전부터 대출을 구해 놓고 더 유리한 조건을 찾아 헤매는 ‘대출 유목민’, 은행 대출을 포기하고 2금융권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출현하는 등 좁아진 대출문에 비상이 걸렸다. 불만이 확산되자 금융당국은 “실수요자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 은행마다 제각각 규제에 대출자 혼란
대출 시장의 혼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당장 11월 입주를 앞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다. 일반 분양자가 임차인을 구하고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받는 당일 그 보증금으로 분양 대금을 완납하는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두고 은행별로 대출 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 실수요자들이 애를 태우는 것이다.
실제 이 단지 전용면적 59㎡를 분양받은 강모 씨는 지난달 전세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서 세입자로부터 계약 보류 통보를 받았다. 세입자가 거래하는 은행이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세입자가 대출을 새로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해당 단지의 집주인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채팅방에서는 “전세대출 받기로 한 세입자와 계약을 했으면 계약을 파기해야 하느냐” “불가피하게 전세를 줘야 하는 집주인은 어쩌란 말이냐”는 등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을 옥죄기 위해 속속 거치 기간을 없애고 있는 가운데, 대출을 일부러 넘치게 받아 일부를 상환하는 식으로 사실상 거치하는 노하우도 실수요자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 9000만 원만 필요한 사람이 1억 원을 빌려서 첫 달에 1000만 원을 미리 상환하면 대출 기간에 따라 초기 십수 개월은 1000만 원 상당의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갚으면 돼 거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온라인 주담대도 비상이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 주담대 오픈런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고, 4일에는 KB국민은행 앱이 먹통이 됐다.
은행권이 중구난방으로 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실수요자의 피해 우려가 커지자 연일 가계대출 관리를 압박하던 당국도 한 발짝 물러섰다. 일부 금융사들이 1주택자에 대한 주담대를 아예 중단하는 등 초강경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것은 과하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가계대출 실수요자 현장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1주택자도 자녀 결혼 목적이나, 자녀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집을 얻어야 한다거나 다양한 수요가 있다”면서 “너무 기계적으로 대출을 금지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가계부채 추세 관리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다음 주 은행장들과 만나 은행마다 들쭉날쭉한 상품 운영 기준을 맞추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추석 전까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은행권 주담대 자율 규제를 재정비할 예정이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