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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우리나라에서 음식 분야에는 통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고추가 임진왜란 때 들어왔다’이다. ‘김치 역사가 150여 년밖에 안 된다’는 주장도 이 통설을 붙들다 보니 나온 것이다. 우리 음식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통설이다. 세계 어느 전통 발효 식품도 100∼200년 만에 자연적으로 탄생한 것은 없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소위 지식인들이 고문헌을 들이대고 만든 통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재의 지리과학, 생명과학, 식품과학, 농경과 문화, 역사 측면에서 보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많다. 만일 통설에 반하는 과학적인 주장들이 나오면, 기존 통설을 주장하던 학자는 증거나 데이터를 찾아 과학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확증편향적 신념으로 그럴듯한 또 다른 설을 만들어 통설을 붙들고 싸우려고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얘기했듯이 ‘진리는 가장 쉽게 이해되어야’ 하지, 여러 가지 설을 동원해야 겨우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진리가 될 수 없다. 아쉽게도 대중은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설에 빠져드는 것이 유식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운데 통설에 반하는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꺼내기도 참 어렵다. 한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일반인에게는 그냥 지나쳐버릴 일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사실 자체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언론에는 크게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거의 20여 년 전에 조선시대 초기 여성의 미라가 발견되었는 데 그 여성의 몸에서 고추씨가 나왔다. 통설을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임진왜란 수백 년 전부터 많은 문헌에서 고추와 김치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식에서 고추는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이다. 고추가 없으면 맛있는 양념을 만들 수 없었고, 고추와 양념이 없으면 김치가 탄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김치 없이 한식을 말할 수 없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