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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생각[이준식의 한시 한 수]〈280〉

입력 | 2024-09-05 22:51:00




병중에 들으니 네가 상주(商州)로 부임하지 않는다지. 떠도는 기러기 신세, 우린 언제 다시 나란히 다니게 될는지. / 먼 이별에 관직이 좋은 줄 모르겠고, 돌아갈 생각하니 세월이 길게만 느껴지는구나. / 글 쓰며 여유 갖는 게 진정 좋은 방책인데, 벼슬 좇느라 성과도 없이 괜스레 고향을 떠났구나. / 경성은 은거하기에 정말 좋은 곳, 바다 같은 인파 속에 제 한 몸을 숨기는 것이리니.

(病中聞汝免來商, 旅雁何時更着行. 遠別不知官爵好, 思歸苦覺歲年長. 著書多暇眞良計, 從宦無功漫去鄉. 惟有王城最堪隠, 萬人如海一身藏.)

―‘병중에 아우 자유가 어명을 받고도 상주로 부임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병중문자유득고불부상주·病中聞子由得告不赴商州)’ 제1수·소식(蘇軾·1037∼1101)



아우 소철(蘇轍)이 생애 첫 발령지 상주로의 부임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형은 마음이 아리다.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고 자기보다 수개월 뒤늦긴 해도 이제 막 관직에 발을 내디딘 아우의 기대감이 실로 컸으련만. 형제는 기러기처럼 나란히 날갯짓하며 큰 업적을 이루리라 다짐했을 테다. 한데 아우가 부임을 포기했다. 당시 저술에 몰두하는 부친 소순(蘇洵)을 시중들려는 효심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혹 첫 부임지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형의 마음은 착잡했다. 가족들과의 이별도 마음에 걸리고, ‘벼슬 좇느라 성과도 없이 괜스레 고향을 떠났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어떻게 아우를 보듬어 줄까. 그래, 예부터 제대로 숨으려면 도심지에 은거하라고 했지. 형은 그런 은거야말로 ‘좋은 방책’일 수 있다는 권면을 떠올렸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