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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못 팔아”…US스틸 매각, 어쩌다 이렇게 뜨거워졌나[딥다이브]

입력 | 2024-09-07 10:00:00


US스틸이란 미국 철강회사를 아시나요.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젠 철강업계에서 존재감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세계 24위) 123년 역사의 기업이죠. 미국 제조업의 영광과 쇠락을 모두 상징하는 기업이랄까요.

지난해 12월 US스틸을 일본 철강기업 일본제철이 149억 달러(약 20조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요. 이제 그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이어집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이 거래를 차단할 거라고 하죠. 이를 두고 ‘가장 멍청한 경제 아이디어(the Dumbest Economic Idea)’라는 한탄(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이 터져 나오는데요. 경제적으로 멍청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똑똑한 선택, US스틸 매각 반대를 들여다봅니다.

US스틸 피츠버그 제철소의 워터타워. US스틸은 1901년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왕’ JP모건이 주도해, 여러 제철소를 합병해 설립했다. 당시엔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다. AP 뉴시스

*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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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도시’의 과거와 현재
오랫동안 ‘철의 도시(Steel city)’로 불려 온 이 도시 사람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제철소에서 일했고, 미식축구팀 ‘스틸러스(Steelers)’를 응원해 왔습니다. 도시 남쪽으로 흐르는 모노가헬라강 옆엔 1875년부터 지금까지 가동 중인 에드가 톰슨 제철소가 자리 잡았죠. US스틸 본사가 있는 피츠버그입니다.

US스틸, 한때는 참 어마어마했죠. 세계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를 돌파한 가장 큰 기업(1901년 설립 당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를 세계 최고 부자로 만든 기업. ‘미국 산업화의 상징’이란 수식어가 과장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은 어떠냐.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24위. 현대제철(18위)보다 작은 철강회사입니다. 미국에서도 뉴코아(Nucor), 클리블랜드 클리프스(Cleveland-Cliffs)에 이어 3위. 1970년대(세계 2위, 연 4000만t 생산)와 비교하면, 미국 내 생산량은 4분의 1 토막 났습니다. 일본·한국·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새로운 기술 투자에 소홀했던 결과죠. 무엇보다 더 이상 제조업이 중심이 아닌 미국 경제에서 그 효용을 잃어갔습니다. “US스틸의 위상은 1916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최고 생산량은 1970년대였죠. 수십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찰스 브래드퍼드 애널리스트의 CNN 인터뷰)

미국 피츠버그에서 US스틸이 운영 중인 에드가 톰슨 제철소. 1875년에 설립돼 역사가 거의 150년에 이른다. AP 뉴시스

모노가헬라강 기슭에 늘어섰던 제철소들이 줄줄이 문 닫던 1980년대. 피츠버그는 다른 러스트벨트(Rust Belt)처럼 침체에 빠졌죠. 실업률은 치솟고, 젊은이는 도시를 떠났습니다. 한때 30만명이던 US스틸 미국 내 직원 수는 이제 1만5000명 수준. 그중 피츠버그에서 일하는 건 3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금 피츠버그는 좌절에 찬 블루칼라 노동자로 가득한 쇠락한 도시일까요?

전혀요. 이제 피츠버그는 의료와 교육, 로봇의 도시로 통합니다. 제철소 대신 병원과 대학이 주요 고용주이죠. 하이테크 산업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층이 몰려드는 지역으로 거듭났습니다. 도시는 다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US뉴스앤월드리포트는 피츠버그를 미국 150대 도시 중 살기 좋은 도시 36위로 선정했습니다. 여행지로 인기 있는 포틀랜드(41위)나 수도 워싱턴DC(44위)보다 높은 겁니다.


“일본에 못 판다”
피츠버그는 펜실베이니아주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이죠.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판세를 좌우하는 경합주입니다. 7개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최대 격전지이죠.

누구든 펜실베이니아를 잡아야만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게 바로 펜실베이니아입니다. 2020년 대선엔 바이든에 승리를 안겨준 곳이고요. 트럼프와 해리스, 양당 대선후보들이 펜실베이니아 잡기에 안간힘인 이유입니다.

두 후보는 펜실베이니아를 찾아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70년 전 미국의 가장 위대한 회사가 바로 US스틸입니다. 일본이 US스틸을 사지 못하도록 막겠습니다.”(8월 19일 트럼프 공화당 후보)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합니다. 언제나 미국 철강 노동자를 지키겠습니다.”(9월 2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일본제철은 IRA 같은 미국 내 제조업 부흥 정책 영향으로 미국산 철강에 기회가 있다고 보고 지난해 US스틸 인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미국 내 반대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최근엔 US스틸 이사회 과반을 미국인으로 채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AP 뉴시스

그리고 이제 바이든 대통령이 나섭니다. 조만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를 공식 발표할 거란 소식이 전해지죠. 불허의 이유는 아마 ‘국가 안보’가 될 겁니다. 철강 생산은 국가 안보에 꼭 필요한데(무기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중요한 산업을 함부로 다른 나라에 넘길 순 없다는 논리죠(하지만 군사적으로 필요한 철강은 미국 생산량의 3%뿐입니다).

도대체 어쩌다 US스틸이 대선을 앞두고 큰 이슈로 떠올랐을까요. 먼저 지난 스토리를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오랜 경영난에 시달리던 US스틸은 지난해 매물로 나왔고, 작년 12월 세계 4위의 철강회사 일본제철이 경쟁 입찰 끝에 인수자로 선정됩니다. 기존 주가보다 40%나 높은 가격(주당 55달러)에 사겠다는 제안에 US스틸 주주들도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를 통과시켰죠. 하지만 산별노조인 미국철강노조(United Steelworkers)는 곧바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해고나 공장 폐쇄를 하지 않고, 노조가 있는 공장에 투자한다’는 일본제철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이죠. 이 지역 정치인들도 노조와 한목소리입니다. ‘대통령이 이 인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죠.

US스틸은 이 좋은 거래를 왜 막느냐고 펄쩍 뜁니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뒤 노후화한 제철소에 약 3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인데요. 거래가 무산되면 투자는커녕, 피츠버그 제철소의 문 닫게 될 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일자리마저 사라질 수 있단 뜻이죠. 데이비드 버릿 CEO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 그 공장(피츠버그)이 다음 10년 동안 버틸 수 없다면, 우리가 왜 거기에 머물러야 하죠?”

매각이 불허될 거란 소식이 알려진 4일. US스틸 직원들이 본사가 있는 피츠버그 도심에서 ‘일본제철로의 매각에 찬성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철강노조와는 반대 목소리를 낸 것. AP 뉴시스



‘US스틸’이란 이름의 의미
기업이 팔려나갈 때 노조가 일자리나 근로조건 축소를 우려해서 반대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좀 어리둥절합니다. 이게 정말 대통령과 양당 대선 후보가 모두 나서서 저지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일인가요.

일단 이번 거래로 미국이 손해를 보는 게 무엇인지가 애매하고요(국가 안보?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 아닌가요?). 또 펜실베이니아주에서 US스틸 또는 그 관련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아야 1만명 남짓이라는데요(펜실베이니아주 인구는 약 1300만명). 왜 US스틸을 일본에 넘기지 않는 게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를 잡는데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더 이상 제철소에서 일하지 않고, 철강산업에 별 관심도 없는(오히려 환경오염에 더 민감한)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왜 이 이슈가 어필할까요. 거의 모든 미국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이 이 거래를 막는 건 경제적으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데 말이죠.

그 이유는 바로 ‘감정’에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 내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요.

US스틸은 1, 2차 세계대전 특수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까지. 미국 제조업의 역사를 함께한 기업이었다. US스틸 홈페이지

레딧에 있는 반응을 보시죠.
‘이건(US스틸 매각은) 미국 철강산업의 관에 못을 박는 일입니다. 제 두 할아버지는 모두 US스틸에서 일했고, 그들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할아버지들이 무덤에서 일어나실 거예요.’

‘US스틸은 (포드의) 모델T와 (보잉의) B-17만큼 상징적이기 때문에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한 80대 US스틸 은퇴자 반응도 비슷합니다. “이 아름다운 역사를 잃을 순 없어요. 제철소는 가족 같은 존재이죠. (인수하는 곳이) 일본인지 아닌지는 관계없어요. 미국인지 미국이 아닌지가 중요하죠.”

합리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사람들은 US스틸이 더 이상 US(미국) 기업이 아닌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1900년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부터 1970년대 미식축구스타 테리 브래드쇼까지, 그 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화려했던 시절의 US스틸은 이제 어디에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이것이 논리가 아닌 감정의 문제인 한, 굳이 이를 거스르려는 정치인은 없을 겁니다. 그것도 대선을 두 달 앞두고는 말이죠. 이 지역 시의원인 샘 데마르코(공화당)는 배런스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US스틸’로 불립니다. 뉴코아 같은 다른 이름이었다면 달랐을 겁니다. 사람들은 마치 워싱턴 기념탑이 팔리는 것처럼 보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있군요. “그들이 변호사 비용의 10분의 1만 써서 US스틸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리브랜딩했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매각 무산)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웃고 있을 한 사람

로렌코 곤칼베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 CEO. 브라질 출신인 곤칼베스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을 키워왔다. US스틸을 인수해 세계 10권 철강회사로 도약한다는 야심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블룸버그TV 화면 캡처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2위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줄여서 클리프스)의 CEO 로렌코 곤칼베스입니다. 클리프스는 지난해 8월 US스틸을 주당 35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죠. 이후 일본제철이 인수자로 결정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비판을 이어갑니다. 주로 일본제철이 인수하는 게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였죠. “일본은 미국의 친구가 아니다”라는 다소 놀라운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일본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라는 건 상식으로 통합니다.)

지금 상황은 딱 그가 주장했던 그 논리대로 흘러갑니다. 일찌감치 그는 미국철강노조의 지지도 확보해 놓은 상황(철강노조는 클리프스의 US스틸 인수를 지난해 8월부터 지지함). 아니, 이대로 가면 일본제철 인수가 불허되고 클리프스에 다시 기회가 돌아가려나요? 실제 곤칼베스 CEO는 얼마 전 애널리스트가 US스틸 인수에 아직도 관심 있냐고 묻자 “(주당) 20달러대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제철이 제시한 인수가격(55달러)의 약 절반으로 후려칠 수 있을 거란 계산인 거죠. 역시나 ‘철강업계 일론 머스크’라는 별명대로 포기를 모르는 집요한 인물입니다.

지난해 12월 일본제철의 인수 소식에 뛰었던 US스틸 주가는 바이든 대통령이 인수를 불허할 거란 뉴스가 전해지면서 4일 급락했다. 구글 금융 

주식시장에선 이미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4일 US스틸 주가는 17% 급락했죠. 주가가 지난해 12월 인수전 전으로 다시 돌아간 겁니다.

개방적이고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한다던 미국 정부의 약속,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걸까요. 아마 미국 정치권은 그 모든 문제를 11월 대선 이후로 미뤄두지 않을까 싶은데요. 로펌 스캐든에서 국제투자심사위원회(CFIUS)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마이클 라이터는 CNN에 이렇게 말합니다. “미일 동맹과 일본제철의 역사, 미국 철강산업의 약점을 고려할 때 합병 반대를 정당화하는 국가안보 위험을 식별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위험을 식별하는 건 훨씬 더 쉽죠.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바로 그 미적분이 이 이슈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하는 미국 내 움직임을 두고 ‘보호무역주의’라고 흔히 표현하는데요. ‘도대체 뭘 보호하는 거지?’가 의문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보호되는 이익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 알겠습니다. 미국 국민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거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미국 산업화의 상징이던 US스틸 매각을 두고 양당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반대에 나섰습니다. 일본 기업엔 팔 수 없다는 거죠. 바이든 대통령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매각을 중단시킬 거라고 합니다.

-수십년 째 쇠락 중인 기업인데, 투자받아서 되살리는 게 나은 일 아닐까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 동맹국에 파는 걸 두고 국가 안보 운운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데요. 매각 반대는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건 논리가 아닌 감정의 문제이죠. 미국 제조업의 좋은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US스틸은 남다른 상징입니다. 펜실베이니아 표심을 잡아야 할 정치인들에게 이 문제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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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