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탄생/사이먼 윈체스터 지음·신동숙 옮김/2만9800원·584쪽·인플루엔셜
어느 날 한 과학 유튜브에 출연한 천문학자가 “우리가 지금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어쩌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더 듣다 보니 고개가 끄떡여졌는데, 우주는 무한할 정도로 광대해서 지금 관측한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옛날에 눈으로 보는 수준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것과 논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앎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책은 아니다. 저자는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식’이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전수됐는지, 전달 수단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컴퓨터, 인공지능(AI) 등으로 전수와 전달 수단이 완전히 달라진 지금 우리에게 ‘지식’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지식을 획득하고 기억하는 데 더 이상 인간의 뇌가 필요하지 않고 컴퓨터가 모든 것을 대체한다면, 지능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중략)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대신 생각해 준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서문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만 알 뿐’ 중)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저자는 1991년 걸프전에 개입한 미국의 홍보대행사 힐앤놀튼 사례를 들며 지식과 정보의 조작, 그것을 이용하는 집단의 무서움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 쿠웨이트 소녀가 워싱턴 의회 위원회에서 이라크 군인들의 잔학 행위를 증언했는데, 이는 파병을 정당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전쟁이 끝난 뒤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소녀는 힐앤놀튼 직원이 가르쳐준 대로 증언했고, 사실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자극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사실이 아닌 것을 마구 올려 돈을 버는 몰지각한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이 횡횡하는 요즘 시대에 자기 생각과 판단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원제 ‘Knowing What We Know’.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