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로 잘 알려진 김명중 사진작가(MJ KIM)가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국 프레스 어소시에이션(PA), 게티이미지에서 사진기자로 지내다 초상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퇴사 후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해 매카트니뿐 아니라 영국 팝 걸그룹 스파이스걸스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 조니 뎁, 무하마드 알리 등 세계 유명 인물들을 촬영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허술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간다며 수많은 지인들과 송별회까지 가졌는데, 처지가 우스워졌습니다. ‘미국 비자를 다시 준비하려면 6개월 이상 걸리는데….’ 급한 마음에 다른 행선지를 찾아 나섰고, 영국 비자는 상대적으로 받기 쉽다는 이야기에 영국행을 결정합니다.
흔하디흔한 도피성 유학 아니냐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 김명중 씨(MJ KIM·52)라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할 법한 청년이 어떤 관성을 깨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을까요. 〈브렉퍼스트〉 팀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사진이 들어왔습니다. 사진은 고통받는 유학생에게 생존 수단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사진은 영어가 필요 없고, 혼자 다니면서 촬영하고 암실에서 현상하면 되잖아요. 학교에서 카메라를 빌려 한 번 촬영해 봤는데 그게 저한테 너무 재밌고 편안하고 주눅도 안 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사진으로 숨을 한 번 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엔 두 번째 고난이 다가옵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1995년 그가 처음 영국에 갔을 때는 환율이 1파운드당 1350원 수준이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3000원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었던 어머니는 김 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안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라’는 어머니의 특명까지 받은 김 씨는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에 나섭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노스(North·북한)에서 왔냐, 사우스(South·남한)에서 왔냐’고 묻던 그 시절, 20대 한국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전공과 관련 있는 프로덕션 회사 수백 곳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고요. 결국 밤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2016년 김명중 사진작가가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로서 폭스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중 사진작가 제공.
살아남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웃음’이었습니다. 사건 사고와 현장 상황을 잘 파악하려면 결국 현지인인 영국 기자들에게 계속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인상을 팍 쓰면서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요. 웃으며 졸졸 쫓아다니는 외국인 인턴 사진 기자를 수많은 영국 기자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도와줬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 기자들과 친해지기도 했고요.
게티이미지 유럽지사의 사진 기자로 근무하던 시절의 김명중 사진작가.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활짝 웃어 보이는 모습이 그의 평소 마인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명중 사진작가 제공.
그렇게 3, 4년가량 지났을 무렵 김 씨는 영국 주요 통신사인 프레스 어소시에이션(PA)으로부터 정식직원 채용 제안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영국 내무부에서 김 씨의 취업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인데요. 당시 영국은 EU 밖 국가의 국민을 고용하는 데 깐깐한 편이었습니다. 영국이나 EU 국가 내에서도 충분히 사진 기자를 고용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외국인을 채용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추방될 위기에 처한 김 씨. 이런 김 씨의 안타까운 상황에 김 씨와 알고 지내던 영국 기자들이 나섭니다. ‘영국 언론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업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내용으로 내무부에 항의하는 편지를 쓴 것인데요. 그렇게 모인 편지가 무려 50여 통이었습니다. 영국 내무부는 결국 취업을 허가했고, 김 씨는 PA에서 연예 담당 사진 기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게티이미지 유럽지사의 사진기자로 근무하던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 김명중 사진작가 제공.
하지만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정말 무식했다’고 표현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만 가지고 퇴사를 했는데, 6개월 동안 아무런 일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굶어 죽는 줄 알았다고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은 많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택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준비되고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또 이직했다고 행복하리란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저 사진기자에서 사진작가로 넘어가고 싶었어요. ‘옳은 시기’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기면, 그 열정에 맞는 행동이 뒤따르니까요. 퇴사는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자신의 공연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김명중 사진작가가 촬영하고 있다. 피아노에 반사된 인물 중 오른쪽이 김 씨다. 김명중 사진작가 제공.
“사진은 열정적으로 수천 장을 찍어서 몇 장을 골라내야 하는 작업인데, 처음에는 너무 재밌어서 공연 한 번 할 때마다 몇만 장씩 찍어서 골라냈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매너리즘에 빠졌고, 즐거움과 고마움을 잊게 되니까 사진에 대한 열정도 식더라고요. 그리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영화 포스터나 패션지 표지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작가로 3년가량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매카트니는 김 씨를 앉혀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MJ, 너의 사진이 요즘은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매카트니의 강렬한 한마디에, 김 씨는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실 제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저를 바로 해고하고 다른 작가를 찾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분이 매니저에게 ‘괜찮은 작가 좀 찾아와’라고 말하면 전 세계 수많은 사진작가가 앞다퉈 올 테고요. 그런데 그분은 제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무언가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것이 내 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배우게 된 기회였어요.”
김명중 사진작가가 찍은 폴 매카트니의 공연 모습. 김명중 사진작가 제공.
“‘제 실력이 월등해서 자꾸 저를 찾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제 사진이 다른 프로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같은 작업이라도 재밌게 하면 좋잖아요. 아마도 ‘MJ는 태도도 괜찮은 것 같고, 만나면 만날수록 편하네’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김 씨는 스튜디오 촬영을 할 경우에도 즐거움과 편안한 분위기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촬영장 분위기도 마찬가집니다. 항상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샴페인부터 맥주, 와인까지 구비해 파티 분위기를 낸다고요. 클라이언트가 흡연자일 경우엔 스튜디오에 종류별로 담배까지 가져다두고요.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 배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서로 다 같이 어울리면 (어색하지 않게) 즐거운 분위기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일단 의뢰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괴로워요. 저는 프로 사진가고, 결과물이 좋아야 한다는 단서가 달린 것이잖아요. 겉으로는 촬영장에 음악도 틀어놓고 파티를 하듯 작업을 하는데, 제 안에서는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해요. 내가 잘 하는 게 맞나, 사진은 잘 나오고 있나, 저 사람은 좋아할까 하는 생각들이요. 클라이언트가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좋아할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고 행복해져요.”
그렇다면 월드 스타의 전속 사진작가는 자신의 업(業)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답게 자부심과 예술적 철학을 갖고 있을 것 같았는데, 김 씨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을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직업이란, 하루하루 살아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 행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경제적 보상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거잖아요. 제가 사진을 찍고 돈을 받아서 삶을 살 수 있는 매 순간이 감사해요.”
사진작가는 자기 자신보다는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직업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김 씨의 이름 석자 만큼이나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 작가’라는 수식어가 알려져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삶이 때로는 허무하게 느껴지진 않을까요.
“자기가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카메라 뒤에 있고 싶은 사람은 자괴감이 느껴질 일이 없어요.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사람이 뒤에 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자괴감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있나’라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난다면 사진작가 김명중을 할 건가요, 아니면 폴 매카트니를 할 건가요?”
“당연히 폴 매카트니죠!”
김 씨 역시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삶이 조금은 부러웠던 것인가 싶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의 대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지만 역시나 담백했습니다.
“사진작가 김명중은 한 번 해봤잖아요.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요!”
청소년기 김명중 사진작가는 놀기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자칭 ‘철부지 망나니’ 소년이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고용 불안정 속에서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내 인생에서 겪은 실패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인생에서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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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