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기명환 금융위원장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6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이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가계부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가계부채 비율을 안정적으로 낮춰 거시경제의 안정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라며 “가계부채 부담이 누적되면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 요소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주택시장이 계속 과열되고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경우 추가 수단들을 적기에, 그리고 과감하게 시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날 언급은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가계대출 관련 발언들이 은행권에 혼란을 주고 대출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이를 황급히 수습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당국의 갈팡질팡 규제가 오히려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로 지목되자 서둘러 ‘메시지 정리’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은행권의 ‘자율 관리’를 강조하는 입장이어서 최근 대출자들의 혼란을 야기한 은행들의 제각각 대출 규제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6일 ‘F4(Finance 4·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수장을 의미)’ 회의 직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한 것은 대출 현장의 혼선을 하루빨리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근까지 이복현 금감원장이 대출 정책에 대해 일관성 없는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가계부채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원장의 끊임없는 돌출 발언을 수습하려고 경제부처와 대통령실이 모두 나선 모양새가 된 것이다.
지난달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왼쪽부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러나 지난달 25일 이 원장은 “(은행권의)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태세를 전환했다. 대출 금리 인상이 은행권의 핵심 수익원인 예대마진을 상승시킨다는 비판이 따르자, 금리 인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에 은행들은 금리 인상 대신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유주택자 대출을 제한하는 간접 대책을 쏟아냈다.
당국의 주문에 따라 은행들이 제각각 대출 제한에 나서고 애꿎은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 원장은 또다시 개입에 나섰다. 그는 4일 가계대출 실수요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후퇴한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일러스트=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은행들에 ‘자율 관리’ 강조…혼란 이어질 듯
정부의 가계대출 기조로 인해 시장 혼란이 가중됐지만 김 위원장은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정부는 최근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연기, 특례보금자리론·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 확대 등을 통해 시장에 “더 늦기 전에 집을 사라”는 잘못된 신호를 줬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경제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라며 “정부가 상황에 맞는 정책들을 조합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은행권에서는 대출 혼란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창구 직원들부터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어떻게 고객에게 대출 상담을 제대로 해줄 수 있겠나”라며 “금융 당국의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권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발언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한편 KB국민, 우리은행, 케이뱅크 등에 이어 신한은행도 10일부터 주택 신규 구입을 목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무주택 세대에게만 허용하기로 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