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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조종엽]79년 만에 받은 ‘침몰 징용 귀국선’ 조선인 명단

입력 | 2024-09-06 23:21:00



일본 정부가 ‘우키시마(浮島)호 침몰과 함께 사라졌다’던 승선자 명부 일부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둔 5일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1945년 8월 우키시마호가 강제 징용됐다가 귀국하려던 조선인 수천 명을 태운 채 폭침된 지 79년 만이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해군이 고의로 폭파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랜 세월 피해자와 유족의 한(恨)을 외면해 온 일본이 이제야 달랑 명부를 가져온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 일대를 요새화하면서 방공호와 철도 건설 등에 조선인을 대거 동원했다. 조선인은 기아와 매질, 중노동에 시달렸다. 패전을 맞아 보복이 두려웠던 일본 해군사령부는 조선인 수천 명을 부산으로 돌려보내겠다며 우키시마호에 태웠다. 그러나 8월 22일 오미나토항을 떠난 배는 이틀 뒤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일본 정부는 배가 기뢰를 건드렸다고 발표했지만 믿기 어려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당시 기뢰 폭발에 나타나는 물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9년 뒤에야 인양한 배는 선체가 안에서 밖을 향해 휘어 있었다. 내폭의 증거다.

▷해군 승조원들이 부산에 가지 않으려고 자침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항 전 승조원들은 ‘전쟁이 끝났는데 조선에 가면 맞아 죽거나 포로가 될지 모른다’며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 배엔 돌아올 연료도 없는 상태였다. 폭발 전 일부 해군이 배에서 내려 구명보트를 타는 모습을 본 생존자도 있다. 폭침이 사고를 위장해 징용 조선인을 몰살하려던 해군사령부의 계획이라는 설도 있다. 배는 처음부터 부산이 아닌 마이즈루항으로 향했다. 사령부에서 일했던 아버지로부터 ‘(사령부가) 배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는 증언이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6일 “인도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대응해 왔으며, 이번 명부 제공도 그런 대응의 일환”이라고 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승선자 명부의 존재가 드러난 뒤에도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하거나 답변을 피해 왔다. 유족들이 낸 배상 청구 소송에선 명부를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것’으로 정의하며 ‘침몰로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최근에야 일본 기자의 정보 공개 청구를 계기로 명부 75건을 보관해 온 것을 인정했다.

▷“자기네가 아쉬워서 (사람을) 갖다 썼으면 되돌려 놔야지. 노예같이 부려놓고 사람을 죽이는 게 인도적인 건가?” 우키시마호 생존자의 호소다. 일본 정부가 뒤늦게 명부를 건네려면 사과와 진상 규명 의지를 함께 표하는 것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은폐하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명부 등 자료가 적지 않다. 총리 방한 등 이벤트에 맞춰 마치 선물 주듯 해서는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것이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