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 땐 소수자-노동 친화 정책 펼 듯 美투자 韓기업에 고용-복지 강화 요구할수도 트럼프 재선보다 韓에 유리할 거라 낙관 금물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흔히 트럼프가 복귀하는 경우보다 해리스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경우가 우리에게 더 편한 상황일 것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해리스는 자신의 고유한 정치적 자산이 축적되기 전까지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안보 영역에서 미국 우선주의 원칙은 견지될 것이지만 트럼프가 공언한 관세 폭탄이 실현되었을 때 정도로 불확실성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돌아온다면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주한미군 축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높고,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비핵화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트럼프가 한미일 동맹 강화를 바이든의 유산이라고 인식한다면 최근 몇 년 동안 유지해온 우리의 외교정책 기조에도 미세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해리스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정책 변화의 진폭이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리스 행정부가 우리에게 마냥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해리스 행정부의 리스크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21세기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친노조 성향의 대통령이다. 뉴딜 정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루스벨트 대통령과 견줄 정도로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내용의 산업정책을 편 대통령이 바이든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다수당이 민주당이었던 첫 2년 동안 기념비적인 법들을 통과시킨다. 낙후된 기반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돈을 풀고, 반도체 산업 및 친환경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제약회사들과 협상하여 65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방정부의 건강보험 처방약 가격을 현저하게 낮추었을 뿐 아니라 인슐린 가격 상한제를 적용하여 연방정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당뇨병 환자들은 월 35달러만 부담하면 되게 하였다.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무산되긴 했지만,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해 대학 학비 융자금을 탕감해 주겠다는 행정명령도 발효한 바 있다.
미국 상무부가 마련한 반도체육성법 시행세칙을 봐도 바이든 행정부의 친노동 정책 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 공장 건설 노동자의 고용 및 관리 규정에 노조원, 여성, 소수 인종의 권익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 불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를 들어 현재 애리조나 TSMC 공장의 생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정부와 노동자들이 대만 노동자들처럼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규정 때문에 노동 강도를 높일 수도 없고, 숙련된 대만 노동자를 애리조나로 보내는 것 역시 노조의 반대로 쉽지 않다. 세제 혜택 및 보조금 때문에 미국에 투자하였으나 노동, 소수자, 환경 등과 얽힌 규제 때문에 운영비용이 올라가는 실정인 것이다.
해리스는 노동 친화적인 정책 기조는 유지할 것이고 바이든 보다 더 여성 및 소수인종의 권익 보호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에서 해리스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교체된 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조금 앞서는 이유는 젊은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지지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여성 및 소수인종 노동자들의 고용, 재교육, 복지 제공을 지금보다 강도 높게 요구할 수 있다. 노동자 정당 그리고 소수자 정당으로 변화하는 민주당 행정부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우리의 경제 안보 정책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