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문화부 차장
영화 티켓값이 올라서 극장에 사람이 없다는 한 배우의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 올여름 찾았던 미국 캘리포니아 한 도시의 영화관을 떠올렸다. 대형 쇼핑몰에 있는 멀티상영관이었고, 디즈니에서 개봉한 화제의 신작을 보러 간 것이었지만 극장엔 달랑 우리 가족과 아이를 동반한 한 남자, 두 팀뿐이었다. 평일 낮이긴 했지만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어 있을 줄은 몰랐다. 빈 상영관과 애니메이션의 요란한 대사가 빚어내는 부조화가 을씨년스러웠다.
극장 산업의 침체는 국내에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시장 조사 업체 컴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 박스오피스 수입은 90억 달러를 조금 넘기는 데 그쳤다. ‘바비’ 등 흥행작이 터지면서 팬데믹 타격을 회복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 이전인 2019년보다 20%, 2018년보다는 24% 감소한 수치다. 논란처럼 티켓 가격 때문이었을까.
미국 티켓 가격은 국내총생산(GDP) 상위 20개국 중 중간 정도다. 매년 평균 티켓 요금 지수를 발표하는 더넘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평균가는 10.78달러였다. 소득 대비 가격은 더 낮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최저시급 기준으로 영화 관람을 위한 노동시간을 계산한 영화진흥위원회 보고서(2021년 기준)에 따르면 미국은 46분으로 5개국 중간인 한국(66분)보다 훨씬 낮았다. 부담 되는 가격이 아니어도 관객은 줄었단 뜻이다.
가격 탓은 손쉽고 휘발성 강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지갑을 여닫는 가치 소비 시대에 극장의 고전을 티켓값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쓴 일본 작가 이나다 도요시에 따르면 쇼츠, 릴스 같은 짧은 콘텐츠가 출현하며 문화는 ‘감상’에서 ‘소비’의 대상이 됐는데, 가성비가 절대적 기준이 된다. 10분 안에 줄거리를 요약한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2시간을 버텨야 하는 영화관은 돈을 떠나 시간, 기회비용 등 모든 측면에서 가성비가 낮은 공간이 됐단 의미다.
연극 같은 무대예술은 어차피 감상자 마음대로 볼 수 없고, 책은 애초에 독자가 읽는 방식을 결정할 수 있지만 영화는 다르다. 볼 건 넘치고 시간은 부족한 시대, 극장의 수동적 관람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게 된 이들에게 빨리 감기가 가능한 대체재가 매일 쏟아지면서 영화의 향유 방식을 뒤바꿔 놨다.
역설적으로 관객의 기대치는 훨씬 높아졌다.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를 포기해도 좋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영화관에 가기 때문이다. 팝콘 브레인(즉각적 자극에 길들여진 뇌)과 효율적 콘텐츠 소비 속에서 현재 영화관은 얼마나 독자적 매력을 갖춘 작품을 차별적 경험 속에서 제공하고 있는가? 지금 가격 논쟁보다 중요한 건 이에 대한 대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