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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승련]‘죽사니즘’ 결단이 빛바래 간다

입력 | 2024-09-06 23:18:00

김승련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영상이 있다. 야당 의원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일제강점기 때 당신 아버지의 국적은 조선 일본 대한민국 중 어디더냐’를 질의하는 장면이다. 김 장관은 제대로 답을 못 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의정 단상에서 15분이나 얼굴 붉힐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국정의 낭비는 안보전략과는 별개로 몇몇 무리한 인사를 한 용산 탓이 크다.

대통령은 지난해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한미동맹 말고는 제대로 된 안보협력체가 없던 우리로선 껍질을 깬 중대한 결정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막겠다며 중동에서 발을 뺀 결정(Pivot to Asia)이 나온 게 2010년이다. 그 후 오커스, 쿼드, 칩4 협력이 진행됐지만, 중국의 심기 등을 고려한 한국은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다.

한미일 협력 강화에서 본 미래와 기회

미중 수교의 주역인 닉슨 대통령은 1990년대에 “우리가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창조자의 도움으로 인간 사회 적응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창조자에게 복수를 시도한 소설 속 괴물 말이다. 중국을 국제무역-금융 시스템 안으로 인도했다가 오히려 당했다고 여긴 미국의 처지를 절묘하게 비유한 것인데, 워싱턴의 반중 정서는 그때보다 나빠졌다. 미국은 겉으로는 뭐라 포장하든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배제하는 글로벌 질서를 짜고 있다. 그 바람에 ‘안보는 미국과 하고, 돈은 중국과 번다’는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기회주의로 여겨지게 됐다. 이런 국면에 한국이 일본과 더 밀착함으로써 3국이 한 몸처럼 경제와 안보이익을 지키자는 게 워싱턴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거기서 한국의 미래와 기회를 봤다.

한미일의 군사협력은 우리 야당과 중-러가 의심하듯 훗날 다자 간 안보협력체인 ‘동아시아의 작은 나토(NATO)’가 될 수도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 탓에 가능성은 낮지만, 100% 안 된다고도 말 못 한다. 이재명 대표의 먹사니즘에 빗대자면 윤 대통령은 ‘죽사니즘(죽느냐 사느냐를 건 국가안보)’의 첫발을 뗀 것으로 역사는 평가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그 과정에 일본과 대타협을 시도해도 되겠느냐고 국민에게 묻지 않고 결단했는데, 2018년 남북 군사합의처럼 훗날의 평가를 받는 영역에 해당하겠다. 야당은 “한국은 들러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 민주당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대안은 안 들린다. 야당 대표의 인식이 “그냥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는 정도라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문제는 필요한 결단이었다 하더라도 국내 정치에선 찜찜함이 넘친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이 안보전략과 역사적 아픔을 구분 못 해서 자초한 일이다. 일본과 협력한다고 해서 “역사를 잊지 말라”고 촉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독립기념관장 등에 뉴라이트 인사들을 임명한 대목에서 찜찜함은 더 커진다. 학술의 자유야 당연하지만, 굳이 공직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모든 정치를 한일전으로 만들겠다는 야당 생각을 알면서도 대통령은 죽사니즘 3국 협력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불필요한 역사논쟁 자초할 이유가 뭔지

김문수 장관 영상처럼 우리 장관들이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48년이냐, 일제강점기 조상들 국적이 일본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봤다면 민망해야 정상이다. 야당을 탓할 때가 아니다. 상황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 유연한 후퇴의 수를 찾아야 한다. 내년 3·1절에도 정부와 광복회가 행사를 따로 치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퇴임 후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퇴로 찾기는 못 할 일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