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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서 쏟아진 야유에 선수들도 위축… 길어지는 ‘홍명보 여파’

입력 | 2024-09-07 01:40:00

한국축구 월드컵예선서 ‘충격 졸전’
홍명보 “팬들 마음 이해… 견뎌내야”
선수들 “이미 결정된 감독, 믿고가야”
김민재, 관중석 쪽 찾아가 자제 요청… 손흥민 “우리가 적 만들어선 안돼”





한국 축구대표팀이 팔레스타인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을 치른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등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때는 물론이고 경기 내내 전광판에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사진)의 얼굴이 잡힐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이어졌다. 캡틴 손흥민 등 선수들이 화면에 비칠 때는 환호가 나오다 홍 감독이 나오면 곧바로 야유를 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팬들은 ‘정몽규 나가’ ‘홍명보 나가’ 등을 수차례 외치기도 했다.

2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한 축구협회가 차기 사령탑으로 외국인 감독을 우선 알아보겠다고 했다 돌연 홍 감독을 선택한 것에 대한 팬들의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팬들의 야유 속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은 이날 96위로 73계단 아래인 팔레스타인과 졸전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A매치 복귀전을 치른 홍 감독은 “(팬들이 야유하는) 그런 장면들이 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 팬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앞으로 제가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응원을 받아야 할 안방경기에서 야유를 접한 선수들도 심리적 부담을 안고 경기를 뛰었다. 선수들은 “(감독 선임을) 바꿀 수 없는 만큼 믿고 가야 한다”며 “응원을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손흥민은 “팬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긴 할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주어진 환경에서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해야 하는 게 선수들의 몫이다.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에서 염치없지만 팀의 주장으로서 팬들의 많은 응원과 사랑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도 “이미 (감독 선임이) 결정된 과정에서 바뀔 수 없는 부분이다. 믿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풀타임을 소화한 이강인도 “감독님과의 첫 경기를 응원보다 야유로 시작해서 매우 안타깝다. 감독님이 좋은 축구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100% 따르겠다. 좋은 결과 내도록 노력할 테니 (팬들도) 많이 아쉽고 화나겠지만 응원과 관심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의 경기 뒤 관중석 쪽으로 다가가 야유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김민재. X 캡처 

주전 수비수 김민재는 경기 뒤 직접 관중석 쪽으로 찾아가 “선수들만 응원해 달라. 부탁한다”며 야유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민재는 “시작부터 우리가 못하진 않았다. (마치) 못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부분이 아쉽고 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재의 이런 행동에 손흥민은 “민재와 같은 케이스가 다시 나와선 안 된다. 안방에서만큼은 우리가 우리의 적을 만들어선 안 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선수로서도, 팬들의 입장에서도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축구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야유와 항의는 거짓으로 일관하는 협회와 스스로 본인의 신념을 저버린 감독에 대한 것이다. 붉은악마는 어떠한 순간에도 ‘못하길 바라고’ ‘지기를 바라고’ 응원을 하진 않았다”는 입장문을 냈다. 붉은악마는 또 “경기 종료 후 김민재 선수가 스탠드 N석 쪽으로 와서 ‘좋은 응원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선수와 관중 간의 설전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