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역에서’ ‘보릿고개’ 등 트로트 가수로 유명한 진성 씨(본명 진성철·64)는 학창 시절부터 축구, 배구 등 스포츠를 좋아했다. 전북 부안동초교 땐 배구 선수로 활약했다. 전북 체중에 갈 수도 있었지만 집안 사정상 일찍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수가 된 뒤에도 축구와 테니스 등을 즐겼다. 50세가 되면서 배드민턴에 빠져들었다.
가수 진성 씨가 경기 고양배드민턴클럽에서 라켓을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20대부터 축구와 테니스 등을 즐기던 그는 50세 때 ‘부상이 적으면서 운동 효과가 좋다고 생각되는’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해 14년 넘게 즐기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고양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8월 28일 오전 경기 고양배드민턴클럽. 배드민턴 복식 경기를 하던 진 씨가 웃으며 말했다. 온 몸을 던져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지는 헤어핀을 받아 올렸고, 날아오는 셔틀콕에 스매싱을 때렸다. 폼이 잘 잡혀 있지는 않았지만 오래 친 노련함이 느껴졌다.
“제가 20대 때부터 축구, 테니스를 즐겼는데 어느 순간 자꾸 다치는 겁니다. 비슷한 운동인데 배드민턴은 테니스에 비해 비교적 쉬우면서도 운동 효과는 좋았죠. 그래서 배드민턴으로 갈아탔죠. 14년 전이니 딱 쉰 살 때였죠.”
2010년 경기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배드민턴을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고양배드민턴클럽이 있어 가입해 회원들하고 어울려 쳤다. 직업상 지방에 가야하는 일이 많아 매일 칠 수는 없었지만 주 3회 이상은 꼭 쳤다. 오후에 일정이 많아 오전 9시부터 2~3시간 치고 있다.
가수 진성 씨가 경기 고양배드민턴클럽에서 셔틀콕을 받아넘기고 있다. 고양=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진 씨는 큰 병을 앓은 뒤 건강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2016년 림프종 혈액암에 걸려고, 이어 심장판막증 진단까지 받았다. 항암치료를 6차례 받았다.
“제가 혈액암 치료 중에 심장판막증까지 왔어요. 스텐트를 심어야 하는데 당시 항암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고 있어서 의사가 심장판막 수술을 할 경우 자칫 쇼크가 올 수 있다고 약으로 대신했죠. 그래서 스텐트 수술을 받는 시기를 놓쳤어요. 지금도 약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혈액암은 완치가 없어요. 평소에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운동이 아주 좋습니다.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려면 몸을 적당히 움직여야 합니다.”
진 씨는 어릴 때부터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대 때부터 유랑극단 따라다니며 노래를 불렀는데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 20대 들어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러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고, 결국 혈액암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으니까요. 게으르면 운동 못해요. 전 지금도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배드민턴장으로 나옵니다. 지금도 운동하면 즐겁고 행복해요.”
가수 진성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제공 토탈셋
세계보건기구(WHO)는 운동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체력유지, 향상을 위한 훌륭한 신체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가사는 ‘노동’이란 개념이 있지만 신체활동 뿐만 아니라 뇌의 활성화를 촉진한다. 또한 은퇴한 노년 남성을 조사해 보니 이들 중 아내의 집안일(가사)을 도와주는 남성들이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결과도 있다. 특히 장수하는 노인들은 주변에서 몸을 생각해서 쉬라고 계속 말려도 집안일을 기꺼이, 즐겁게 한다.
가수 진성 씨가 경기 고양배드민턴클럽에서 스매싱을 때리고 있다. 고양=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사실 결혼식도 안 올리고 혼인신고만 하고 살았죠. 그래서 아내에게 늘 미안합니다. 제가 장돌뱅이처럼 떠돌아다니다 가정이라는 게 생기니 안정이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30~40대 바쁘게 지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부수 기지입니다. 뭐 능력이 돼야 결혼하죠. 괜히 데려가 고생만 시킬 수 있고…. 그래서 결혼이 늦어졌는데 아내 때문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어요.”
진 씨가 혈액암에 걸렸을 때도 아내 용 씨의 헌신적인 간호가 큰 힘이 됐다.
그는 연예인 축구단에서도 활동했다. 코미디언 고 남보원 씨가 운영하던 남보원 축구단에서 뛰었다. 그는 “남 선배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내가 그 축구단을 운영하기로 했었는데 나도 몸도 좋지 않아 엄용수 선배님께서 맡았다”고 했다.
가수 진성 씨가 노래를 부르다 팬들에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토탈셋
20대부터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발매하면서 무명 가수로 시절을 보낸 그는 1994년 ‘님의 등불’로 데뷔했다. 이후 메들리 음반을 계속 발매하면서 김용임, 김란영, 신유 등과 함께 ‘트로트 메들리 4대 천왕’으로 불렸다. 2002년 발표한 ‘내가 바보야’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5년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태클을 걸지마’를 발표했지만 무명 가수를 탈출하지는 못했다.
가수 진성 씨가 노래를 부르다 팬들의 환호에 엄지척하고 있다. 사진 제공 토탈셋
그는 “지금이 트로트 가수론 최고의 시절”이라고 했다.
“지금 사실 어찌 보면 트로트가 최고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가수들이 미스터트롯이나 미스트롯을 통해 많이 발굴돼 저변이 넓어졌어요. 요즘 초등학생들도 제 노래 안동역에서를 부르고 다니니까…. 참 시대가 많이 달라졌죠. 또 과거 트로트하면 신세타령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젠 다양한 가사에 음악 템포도 빨라져 젊은이들이 좋아하게 됐죠.”
가수 진성 씨가 경기 고양배드민턴클럽에서 라켓을 들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고양=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배드민턴 치며 몸을 만들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팬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