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조이자 소형 많은 ‘노도강’에 매수세… 재건축 호재 노린 ‘갭투자’도
“강남3구, ‘마용성’이 들썩이던 3월부터 6월까지는 꼼짝도 안 하더니 7월에 거래가 늘었다. 휴가 기간이 껴 있던 8월에도 문의는 꾸준했다.”(서울 강북구 부동산공인중개사 A 씨)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 시장이 크게 달아오르자 매입 열기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 호가가 크게 뛰자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으로 매수세가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은 “올해 중 6~7월이 가장 거래가 활발했다”며 “1년간 쌓아놓았던 적정 가격 매물이 한두 달 사이 다 소진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출을 조이며 ‘집값 잡기’에 나선 가운데 8월 넷째 주까지 23주 연속 집값이 오르자 서울 부동산시장에서 9억 원 이하나 소형 평형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매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윤채원 기자]
기자가 9월 2일 노도강 지역에서 만난 부동산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거래 증가를 체감한다고 전했다. 노원구 공인중개사 B 씨는 “6~7월엔 한 달에 네다섯 건을 거래했다”며 “주변에 부동산중개업소가 10개가량 있는데, 이 정도면 아파트 거래치고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렴하게 나온 매물은 이미 다 팔렸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9억 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노도강 지역 주요 아파트 단지는 거래량이 늘었다. 강북구 대장 아파트 ‘SK북한산시티’는 1월 거래량 6건에서 7월 27건으로 늘었다. 도봉구 ‘도봉한신’도 1월 5건에서 7월 16건으로 증가했다. 1월부터 9월까지 거래량 100건을 넘은 서울 아파트 22개 단지에 강북구 아파트가 포함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결과 서울 지역 매매가 4억~9억 원 아파트의 거래 비중은 7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4월 40.7%, 5월 38.1%, 6월 35.4%로 거래 비중이 줄어들다가 7월 36.6%, 8월 43.2%로 늘어난 것이다.
노도강 부동산시장에서는 30대 초중반이 아파트 거래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강북구 공인중개사 A 씨는 “매입 문의를 하는 고객의 절반 이상이 신혼부부 또는 갓난아기가 있는 부부”라고 말했다. 도봉구 공인중개사 C 씨는 “지하철 역이 가까운 곳이라 입지를 보고 주말에 찾아오는 젊은 사람이 많다”며 “구축도 리모델링한 곳 위주로 7월에 매매가 많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노도강 지역 9억 원 이하, 소형 평형 아파트의 거래 증가 배경으로 대출 부담에 따른 ‘풍선 효과’를 꼽았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서울 외곽, 특히 노도강은 투자보다 실거주 수요가 강한 지역”이라며 “대출을 최대한 활용해서라도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은 “대출한도를 낮추는 정책을 펼치는 지금은 매입 여력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노도강 부동산시장에서는 정부 대출 정책과 대출금리가 매입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나온다. 강북구 공인중개사 최모 씨는 “강남3구나 마용성 지역은 현금이 충분한 사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출 영향이 적을 수 있지만 여긴 다르다”며 “‘신생아 특별공급’, 신혼부부 대출 등 정부 대출 정책과 금리가 매입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데, 대출이자가 높아질수록 값이 싼 노도강 지역이나 소형 아파트로 눈을 돌린다”고 설명했다. 노원구 아파트 거래량은 7월 기준 722건으로 전달 대비 60%가량 증가했고 도봉구는 36%, 강북구는 30% 늘었다.
노도강 지역의 재건축 호재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원구 한 공인중개사는 “장기적으로 재건축까지 바라보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중간 이익을 보려고 오기도 한다”며 “재건축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금액이 몇천만 원씩 뛰는데, 여기는 갭투자 비율과 실거주 목적이 4 대 6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도강 갭투자 증가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9월 1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월 노도강 갭투자 의심 주택 구매 건수는 지난해 7월 17건(130억 원 규모)에서 올해 7월 43건(360억 원 규모)으로 크게 늘어났다.
8월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폭은 둔화됐지만 도봉구와 노원구는 도리어 상승폭이 커졌다. 도봉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전주 0.1%에서 0.12%, 노원구는 0.12%에서 0.17%로 올랐다. 강북구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 중심부와 비교해 아파트 값이 얼마 오르지 않은 듯해도, 이곳 실거래가를 감안하면 몇천만 원 단위가 움직인 것도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도강 일부 단지에서는 호가가 오르고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8월 8억4000만 원에 팔렸던 노원구 ‘하계1차청구’ 전용면적 84㎡ 호가는 현재 8억5000만 원부터 9억3000만 원까지 형성돼 있다. 도봉 ‘창동신도브래뉴1차’ 전용면적 121㎡는 8월 10억1000만 원에 거래돼 이전 최고가인 8억9900만 원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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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56호에 실렸습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