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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최혁중]0.005초의 차이, 결정적 순간을 판정하는 사진

입력 | 2024-09-08 23:06:00

게티이미지의 영국 사진기자 리처드 히스코트가 로보틱스 카메라로 촬영한 2024 파리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전의 ‘결정적 순간’. 7번 레인의 노아 라일스(미국)가 0.005초 차로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장면이 깨끗한 해상도로 촬영됐다. 사진 출처 리처드 히스코트 인스타그램


세계 최대의 사진 에이전시 중 하나인 게티이미지의 영국 사진기자 리처드 히스코트는 이번 파리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전이 열린 스타드 드 프랑스 천장에 ‘로보틱스 카메라’를 설치했다. 폐회식 등의 행사에서 사용된 수많은 조명 사이에 놓인 이 카메라는 경기장 내 미디어 좌석에서 사진기자의 PC로 제어됐다. 이렇게 설치된 카메라는 게임을 하듯 조이스틱으로 줌이 가능하고 앵글을 바꿀 수도 있다. 히스코트는 6만4000분의 1의 셔터스피드로 1초에 30장이 찍히는 캐논 R3 카메라로 금메달이 갈린 이 순간을 기록해냈다. 100m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미국의 노아 라일스와 자메이카의 키셰인 톰프슨 모두 우승을 확신하지 못하고 전광판을 바라봐야만 하는 ‘찰나’의 상황이었지만 9초784의 라일스가 9초789의 톰프슨보다 0.005초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100분의 1초까지 표기하는 육상 기록 표기상 라일스와 톰프슨의 공식 기록은 모두 9초79로 기록됐다.

심판들이 판독한 ‘포토피니시’. 사진 출처 오메가 제공

이 사진은 올림픽 타임키퍼인 오메가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 선보인, 초당 4만 장의 사진을 기록할 수 있는 ‘스캔 O 비전 얼티밋’ 카메라가 찍은 것보다 훨씬 더 해상도가 뛰어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메가의 카메라는 사진기자들이 사용하는 사진보다 더 많이 찍혀 ‘포토 피니시’ 판독 능력은 좋지만 해상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최혁중 사진부 기자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에는 경기장 내 수많은 영상 장비들이 선수들의 ‘결정적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설치된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는 더 정확하게 보고, 시청자들이 더 몰입할 수 있도록 광학센서를 활용한 ‘컴퓨터 비전 시스템’이 사용됐다. 오메가는 경기장 내 수많은 카메라로 선수의 경기 장면을 기록하고 이 기록된 이미지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4K UHD 그래픽으로 생성해 내는 비오나르도(Vionardo) 기술도 선보였다. 예를 들면 테니스 선수가 서브를 넣을 때 라켓에 맞는 공을 실시간 추적해 리턴 시간을 계산하고 체조 선수의 점프 높이와 체공 시간, 발의 각도까지 계산해 데이터로 제공한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경우에는 몇 cm가 모자라 바를 넘을 수 없었는지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했다. 명확한 리플레이 화면도 제공해 심판들의 판정에도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비전 기술’은 선수들의 유니폼 안에 물리적인 센서를 부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선수에게 방해받지 않는 거리에 설치된 카메라로 영상만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금메달 5개를 비롯해 총 7개의 메달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한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의 ‘심장 박동수’ 측정에도 이 ‘비전 기술’이 사용됐다. 심장 박동에 따른 선수들의 얼굴색 변화를 분석해 심박수를 측정하는 원격광혈류측정(Remote photoplethysmography) 기술이다.

실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는 ‘비전 기술’은 스포츠뿐 아니라 산업 현장, 공공장소, 병원, 길거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 사용돼 오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주취자, 노숙인 등 실신해 쓰러진 사람을 실시간으로 탐지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AI 기술’을 대전시에 실제 적용했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의 행동을 인식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과거 필름카메라 시절 100m 육상 경기에서 스프린터를 상대로 36컷 필름 한 롤에서 초점을 제대로 맞춘 사진을 몇 장이나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사진기자의 실력이 갈리던 때가 있었다. 축구에서는 골을 넣은 선수의 모습과 날아가는 축구공이 함께 있는지에 달렸다. 분명 찍을 때는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눈으로 보였고 찍긴 찍었는데 필름 현상을 해보면 축구공은 없었다고 옛 사진기자 선배들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만큼 ‘찰나의 순간’이 흔들림 없이 초점이 제대로 맞은 ‘온전한 사진’으로 기록되기 힘든 시절이었다.

바야흐로 모든 것을 찍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의 발전으로 카메라를 든 이들에게 전혀 다른 앵글을 보여줘 공정한 스포츠에도 기여하고 인류의 위험까지 예측해 안전한 세상도 만들어 준다니 말이다. 앞으로 카메라의 발전이 인류에 어떤 편리함으로 다가올지 지켜볼 일이다.

최혁중 사진부 기자 saji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