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는 소비자들의 선호나 삶의 방식 변화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많은 가구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아무래도 비슷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도배에 사용하는 벽지 역시 건설사에서 가장 무난하고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무채색의 벽지를 선택하기 때문에 모든 집이 동일하다. 늘 비슷한 구조의 집을 같은 벽지로 도배하던 나는 5년 넘게 일해 온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을 떠나 현재는 고객들의 의뢰를 개별적으로 받아 다양한 집을 도배하고 있다. 이사를 하며 도배만 새로 하는 집도 있고, 때로는 기존의 집을 전부 뜯어고치는 리모델링 현장에서 도배를 하기도 한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그렇게 완성된 집은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아주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도 리모델링을 하고 나면 신축 아파트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으로 깨끗하고 예쁜 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공정들은 따로 움직이지만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완성도 높은 집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리모델링하듯 새롭게 바꾸어야 하는 때가 온다. 학생에서 성인이 되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결혼을 하는 등 인생의 큰 변화를 마주하는 순간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면 단순히 업무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 생활리듬, 인간관계 등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한다. 이때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불필요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새롭게 디자인하고 계획하는 삶에 잘 어우러지도록 활용해야 한다. 또 결혼을 하면 단순히 함께 사는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기존의 좋지 않은 습관을 버려야만 할 때도 많다. 상대방의 가족 등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서로 적응하고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맞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비록 내 안에 바꿀 수 없는 부족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나의 일부다. 기초공사 위에 끊임없이 리모델링을 해나가는 듯한 우리의 삶,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