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텔레그램 망명’이 벌어진 지 이달로 딱 10년이 된다. 2014년 9월 검찰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 신설과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 압수수색 논란으로 ‘사이버 검열’ 우려가 불거지면서 소수만 썼던 텔레그램이 순식간에 다운로드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요즘 텔레그램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만악(萬惡)의 온상으로 통한다. 범죄 정보와 마약, 딥페이크·성착취물, 리딩방 사기, 테러 모의, 극단주의, 불법 총기 거래…. 세계의 온갖 어둠에 텔레그램이 빠지지 않는다.
▷“사용자가 갑자기 9억5000만 명으로 늘면서 범죄자들이 악용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내부적으로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6일(현지 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성명이다. 두로프가 최근 프랑스에서 조직범죄 공모 등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당국에 꼬리를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긴 성급하다. 텔레그램은 근처에 다른 사용자가 있는지 알려주는 ‘People Nearby’ 기능이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삭제하겠다고 했지만 원래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기능이다. 핵심은 향후 텔레그램이 각국 사법당국의 요청에 응답하느냐이다. 텔레그램은 지금도 홈페이지 ‘자주 묻는 질문(FAQ)’을 통해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를 포함한 제3자에게 0바이트의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전한 텔레그램 전직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정부 기관 요청 이메일 함은 거의 체크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초법적 존재처럼 운영돼 온 텔레그램이 각국의 법 규제에 승복하기 전까진 딥페이크 등 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끝내기 어렵다. 흔히 텔레그램은 모든 메시지를 서버에 저장하지 않는다고 오해되지만 그건 ‘비밀 대화’를 설정했을 경우이고, 기본 설정인 일반 대화나 그룹 채팅은 내용이 여러 나라에 있는 서버에 분산돼 저장된다. 범죄 메시지는 어떤 플랫폼이라도 사법당국에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야 범죄자들이 악용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