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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포기 안 하면 ‘은혜’처럼 반드시 꽃피우는 시간 와요”

입력 | 2024-09-09 03:00:00

88서울올림픽 탁구金 양영자
“우직한 노력으로 올림픽 메달
힘든 시절 청년들 힘 얻었으면”



지난해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만난 이은혜 선수(왼쪽)와 양영자 선교사. 양영자 선교사 제공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은혜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반드시 꽃피우는 시간이 온다고 믿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여자복식에서 현정화와 함께 금메달을 딴 양영자 한국 WEC 국제선교회 선교사(60)는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은혜가 딴 파리 올림픽 동메달(탁구 여자 단체전)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양 선교사는 중국 허베이성 출신인 탁구 선수 이은혜(29)가 2011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귀화한 뒤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준,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선수 생활을 끝낸 뒤 1997년부터 몽골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에서 탁구를 통한 선교 활동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유소년 선수들을 집에 오게 해서 같이 성경 공부를 했지요. 그 안에 네이멍구로 탁구 유학을 온 은혜가 있었던 거예요.”

양 선교사는 “은혜는 연습벌레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탁구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참가비가 없어 경기에 못 나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딸에게 탁구를 더 시키고 싶었던 이은혜의 부모는 양 선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양 선교사는 “미성년인 선수를 국내로 데려오는 방법은 입양밖에 없었다”며 “그때 개인적으로 탁구를 가르쳐주던 이충희 목사(당시 사랑의 교회 부목사)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받아줬다”고 했다.

귀화는 했지만,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양 선교사는 “은혜가 너무 어려서부터 부모 곁을 떠나 산 데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아 한국에 온 뒤 약 7년간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했다.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도 정말 많았지만, 운동과 신앙으로 버텨냈다는 것.

양 선교사는 “이번 파리 올림픽 출전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했다. 올림픽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본인과 양 선교사는 물론이고 탁구계 누구도 이은혜의 출전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고. 탁구협회가 세계 랭킹 30위 안의 선수를 선발하기로 했는데, 전지희(2011년 중국에서 귀화), 신유빈은 일찌감치 확정됐지만 올림픽 한 달 전까지 나머지 한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30위권 안에 드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 각종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켰지만 결국 실패했다. 양 선교사는 “어쩔 수 없이 국내 선발전을 치렀는데 당시 세계 랭킹이 46위 정도였던 은혜가 기염을 토하며 출전권을 따냈다”며 “저는 물론이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 바늘구멍을 뚫은 것이다.

양 선교사는 “은혜는 포기를 모르는 우직한 노력으로 결국 올림픽 메달이라는 일생의 꿈을 이뤄냈다”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많은 젊은이가 은혜를 보며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